경주 기림사 삼층석탑
여섯시 오분 전 / 이창수
마을에 석탑이 있다
석탑 때문에 그 인근을 탑동이라 부른다
마을 안에 또 다른 마을이 있는 셈이다
상부가 기울어진 탓으로
언젠가 석탑이 무너지고 말 거라는
석탑이 무너지면
마을에 재앙을 불러올 거라는
불안을 견디며 석탑이 서 있다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이
불안한 석탑의 내력을 물어보지만
마을 사람들 누구도 불안의 내력을 모른다
팔촌 형님은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 탓으로
별명이 여섯시 오분 전이다
가난 때문에 지병을 별명으로
평생을 마을의 석탑으로 견뎌왔으니
일가의 근심이 형님의 지병만큼 깊다
물려받은 근심을 견디며 시계를 본다
세상은 늘 여섯시 오분 전이다
- 『귓속에서 운다』, 실천문학사, 2011.
* 애초의 석탑 건립 이유가 사리 보관이든 다른 이유가 있든 간에 당대 민중들의 기원이 탑에 스며있을 것이다. 층층이 앉은 몸돌처럼 삶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고, 날개 닮은 지붕돌처럼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인은 석탑 상부가 기울어진 것에서 불안을 느끼지만“불안의 내력”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불안은 지상에서 목숨을 얻는 순간에 치러야 할 존재론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일 수 있다. 또한 불안이 줄어들거나 깊어지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자유를 꿈꾸는 자체도 불안일지 모른다.
이처럼 불안은 삶의 한 모습으로 늘 곁에 있는 것이니, 이 불안이 여섯 시 오분 전이나 오분 후로 기울어진 석탑과 팔촌 형님에게 투영되었다 한들 그것이 그렇게 야단스럽거나 안쓰러운 느낌은 아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지병이 있다면, 그건 “불안을 견디며”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어두운 마을의 잠 / 고성만 (0) | 2014.07.06 |
---|---|
철물점 여자 / 홍정순 (0) | 2014.07.01 |
칸트를 읽을 때의 습관 / 김윤하 (0) | 2014.06.22 |
꽃나무의 미열 / 이규리 (0) | 2014.06.17 |
영통의 기쁨 / 박희진 (0) | 2014.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