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겨울강 / 이화은
같이 죽자
장대 같은 아들의 멱살을 움켜잡고
새벽 얼음물 속으로 끌고 드는 아비와
두 다리 한사코 뒤로 버팅기는
아들
그날 강물은 소뿔에 받혀 퍼렇게 멍이 들었더니
갈대꽃 몇 번인가 흘러가고
다시, 나
겨울 강 보러 왔네
고삐를 누가 끌고 가는지 묻지도 않고
강둑은 끄덕끄덕 따라만 가는데
그 부자(父子)의 강은 어디쯤 흘러갔을까
오래된 눈물이 도진 듯
하늘이
풍경들 속에서 주춤 몸을 빼는데
얼비치는 저 시푸른,
멍꽃에서는 언제나 천륜의 냄새가 나더라
가슴에 장대 하나 가로지르고 또
겨울 강 보러 왔네
- 『미간』, (주)문학수첩, 2013.
* 아버지와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시인만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독자는 나름의 이유를 갖다 대면서 생각에 잠길 것이다. 부자간의 문제인 만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로 두루뭉술 넘겨짚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잠복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사춘기를 지나며 발현되기 쉽고 그 과정에 부자간의 갈등과 충돌도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아버지에겐 안된 일이지만 아버지를 맹목으로 따르던 시절은 끝이 났다고 하겠다. 아버지의 경제력이라든지, 아버지의 도덕심이라든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이라든지 상당 부분이 아들의 불만 대상이 되고 어떤 식으로든 바깥 행동으로 나타날 텐데 그런 아들의 변화와 대적 시선을 아버지 입장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부자를 가까이 지켜본 혈육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지만, “고삐”를 쥐고 사춘기를 빠져나온 아들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때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앓는 보편적 남성성을 갖고 있지만 “퍼렇게 멍이” 든 겨울 강의 이미지를 통해 불화와 그로 인한 상처가 유난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러 “겨울 강”에서 “천륜”을 떠올릴 정도로 상처가 아물어 갔을 테지만 그때 가슴을 질렀던 “장대” 하나는 끝내 빼지 못하고 평생의 유산으로 남았나 보다.
사는 건 고만조만 어렵다는데, 저마다 가슴에 장대 두어 개 심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어루만질 수 없는 장대를.(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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