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뒤편의 향기 / 안차애

톰소여와허크 2014. 9. 21. 07:53

뒤편의 향기 / 안차애

 

하루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아파트 뒤편 공터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아파트 건물과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의 숨겨진 공터 그곳엔

색색으로 가꾼 꽃은 없다

인사 깍듯한 경비 아저씨도 없다

광고문 청첩장 공과금 독촉장들, 와글거리는 우편함도 없다

뒤편은 거짓말처럼

그저 잠잠하다, 그저 서늘하다, 그저 한적하다

 

아니다

피로한 마음을 슬리퍼처럼 질질 끌고 들어가 보면

보도블록 사이사이로

아기 솔이끼 어린 질경이 뾰족 민들레

빈틈없이 빼곡히 고개 내미는 발돋움 소란이 한창이다

응달 쪽 나무들의 연푸른 그늘자리엔

소소한 바람의 하루치 수다가 유쾌하다

새소리 샤워는 기본이다

 

뒤편이 풍성한 사람을 알고 싶다

야금야금, 그에게로 가는 길 하나 내고 싶다

 

- 『치명적 그늘』, 문학세계사, 2013

 

 

  * 가치 함수의 특징 중의 하나로 준거점 의존성을 든다. 손익의 절대적 크기와 그에 따른 만족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익과 손실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심리적 만족도는 사물과 현상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좌우되는 면이 분명 있다. 남이 주목하지 않는 뒤편에서 오히려 눈과 귀가 즐거워지고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도 자신 내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솔이끼와 질경이와 민들레에 눈 맞추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반겨 듣는 마음, 소소한 것과 소통하는 마음이 있기에 뒤편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싫든 좋든 간에 다수의 사람들은 생업과 살림 또 세상일과 관계로 “와글거리는” 길로 매일매일 잘도 다닌다. 그러다가도 문득, 눈에 든 높쌘구름처럼 자유롭게 뜨고 싶다는 생각도 할 텐데, 그럴 때 슬그머니 가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자신만의 “뒤편”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 곳에 빈 의자 하나 준비되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