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사실 탁본(제주 추사관에서)
풍사실(豐士室) / 이동훈
울타리 위로 웃자란 가시 분지르고
반가운 기별이 있을까.
모슬포 항으로 목을 빼고 다시 한나절
산방산 쪽으로 돌아설 때면
속울음도 노을처럼 붉지 않았겠냐.
그 적거지에 오니 풍사실(豐士室)*이 이채롭다.
士는 안 그래도 날것을 빼닮았는데
추사의 士는 영락없이 제주 까마귀이다.
一을 듣고 十을 아는 선비(士)라 하여도
갇혀 사는 신세엔 십자가 다는 일일 뿐
맘이 몸을 해치지 않도록
너그럽게 자신을 다스려야 했을 터
스스로 날개를 주니
士는 새가 되어 산방산 위로 솟구쳐
한달음에 바다를 건널 기세다.
풍사실을 책상에 붙이니
선비도 못되면서 어깻죽지만 가렵다.
* 풍사실 : 김정희 글씨, 제주 추사관 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