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무장사지 가는 길

톰소여와허크 2014. 12. 13. 21:12

 

경주 무장사지 가는 길(2012)

 

무장사지 가는 길 / 이동훈

 

 

무기를 묻었다는 무장사지* 가는 길

그대는 뒤로 처지고

나는 그대를 기다렸다가 다시 앞서간다.

사이가 한참 떠서 기다림이 길어질 무렵

그대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남은 길을 혼자 올라간다.

개울물 여러 차례 지나며

손 한번 잡지 못했냐고

혀 차는 소리를 이제 듣는다.

정작 묻어야 할 것은

빼쭉빼쭉 일어나는 내 안의 무기인 것을.

몇 굽이 더 돌아 이마에 꽂히는

서늘한 시선의 삼층석탑.

민낯으로 만나 어줍게 있으니

석탑이 큼직한 발을 먼저 내민다.

눈을 본떴다는 안상(眼象)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코끼리 발이다.

발걸음 맞추어 나란히 앉은 연인이다.

어그러짐 없이 천진한 미소를 뒤로하고

발걸음 재게 놀려

그대의 기다림을 사러 간다.

무기 하나 떨어졌는지

무장 무장 커지는 개울물 소리 듣는다.

 

*무장사지: 경북 경주 암곡동 소재.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개장 유감   (0) 2015.08.03
창림사지 삼층석탑  (0) 2014.12.19
파란 꽃  (0) 2014.10.12
풍사실(豐士室)   (0) 2014.09.10
무서운 이야기  (0)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