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무장사지 가는 길(2012)
무장사지 가는 길 / 이동훈
무기를 묻었다는 무장사지* 가는 길
그대는 뒤로 처지고
나는 그대를 기다렸다가 다시 앞서간다.
사이가 한참 떠서 기다림이 길어질 무렵
그대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남은 길을 혼자 올라간다.
개울물 여러 차례 지나며
손 한번 잡지 못했냐고
혀 차는 소리를 이제 듣는다.
정작 묻어야 할 것은
빼쭉빼쭉 일어나는 내 안의 무기인 것을.
몇 굽이 더 돌아 이마에 꽂히는
서늘한 시선의 삼층석탑.
민낯으로 만나 어줍게 있으니
석탑이 큼직한 발을 먼저 내민다.
눈을 본떴다는 안상(眼象)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코끼리 발이다.
발걸음 맞추어 나란히 앉은 연인이다.
어그러짐 없이 천진한 미소를 뒤로하고
발걸음 재게 놀려
그대의 기다림을 사러 간다.
무기 하나 떨어졌는지
무장 무장 커지는 개울물 소리 듣는다.
*무장사지: 경북 경주 암곡동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