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바람과 다투다 / 백무산

톰소여와허크 2014. 10. 6. 13:23

바람과 다투다 / 백무산

 

 

고약한 이웃을 두었다고 투덜댔다

마을 좁은 길가 외딴집 헐어낸 자리

자갈투성이 땅을 허리 굽고 억세고 그악스러운 할머니

밭을 일구느라 가뜩이나 좁은 길을 파먹고

자갈 풀뿌리 던져놓아 질척한 길을

발을 들고 건너며 사정도 하고 짜증도 내어보지만

흙이라도 파먹어야지 길에서 뭐가 나오나? 막무가내다

또 봄이 오면 다툴 게 걱정이다

 

그 밭이 조용하다

봄이 오고 건너 밭에 씨감자 내고 모내기철이 끝나도록

기척이 없다 장마가 지나가고 뻐꾸기가 울고

작년 밭고랑이 다 지워지도록 호미질 소리 없다

꽃뱀이 와서 교미를 하고 쑥부쟁이 흐드러지도록

할머니 기침소리 없다

 

여윈 손목 자루로 여문 땅 괭이질로 다 일구고는

겨우 두해 부쳐먹은 그 밭머리에서 나는 자꾸만 목이 멘다

날선 내 말이 가시는 길바닥에 가시가 되진 않았을까

꽃을 피게 하는 일과 마음의 짐 한줌 덜어주는 일

그보다 더 잘난 일 세상에 뭐길래 나는 닳고 닳도록

풀 한포기 나지 않는 길을 끌고 다녔을까

 

이 들에 바람과 다투는 자는 나밖에 없구나

 

-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

 

 

  *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도 좋지만 남을 도우며 사는 삶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자가 현실 질서를 해치지 않는 정직하고 윤리적인 삶에 충실한 것이라면, 후자는 좀 더 적극적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또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스스로 돕고 남도 돕는 일이라면 더욱 좋을 것인데, 시인이 내세운 “꽃을 피게 하는 일”과 “마음의 짐 한줌 덜어주는 일”도 결국 나와 남, 더불어 사는 공동체 모두에게 이롭고 조화로운 일을 꾀하는 것일 테다.

  그런 시인에게 얹힌 마음의 짐 하나 있으니, 길의 편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길을 넘보는 이웃 할머니에게 “날선”말을 해댄 것이다. 비록 “고약”하고 “그악스러운”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방법으로 갈등을 조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는, 스스로 “풀 한포기 나지 않는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내면의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크고 작은 갈등과 오해와 실수는 삶에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 다 같이“꽃을 피게 하는 일”은 신념을 갖고 실천하는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실수에서 배우고, 다툼에서 조정하는 과정이며, 어떤 경우든 남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할 문제임을 생각한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