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jaeun5410/116
육개장 유감 / 이동훈
김 서린 비닐봉지를 넘겨받으며, 차림표의 육계장은 육개장이 맞다고 정중하게 건방 떨고 집에 와서 냄비에 국을 풀어놓으니 아버지 흠흠거리며 혹, 개장국 아니냐고 물어온다. 개장은 개장이지만 개 아닌 개장이라고 부연 설명 안 하더라도 육개장이라고 하면 그만일 것을. 개, 그거면 어떠냐고 괜한 소리 내다가 꾸중 먹고 밥상 물리니 쪼르륵 소리가 유난하다.
개를 개로 보는 아버지가 반려동물의 권리를 새삼 주장할 리 없고. 불교적 샤머니즘의 영향인가 싶지만 작은누이 따라 예수를 반쯤 영접하고도 개고기만은 한사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 마음이 개에게도 미치고(소에게는 조금 미치고), 예수 사랑이 개에게 안 미치는 것은 아닐 터 굳이 아버지에게 삐딱할 이유도 없는데 무당도, 부처도, 예수도, 귀신도 다 믿어 결국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난놈인 양 여기면서 밥 한 공기만도 못한 개똥철학으로 쫄쫄 굶은 것이다.
뒤늦게 고기 맛을 보니 소고기가 아니고 닭고기다. 그럼, 육개장(肉-醬)이 아니라 육계장(肉鷄醬)이 아닌가. 어찌하나. 식당 주인에게 다시 갈 염치는 없고 이 글로 심심한 사과를 대신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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