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思悼) (이준익 감독)
“우리는(평소 자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자기 자신은 목적이자 상수로 타인은 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변수로 간주하곤 한다”(‘철학브론치’, 정시몬)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영화 《사도》의 영조가 그렇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조는 명민한 군주일 수는 있어도 편안한 아버지는 못 되었다. 기대치를 밑도는 아들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는 아버지와 그 불만을 화살로 받으면서 조금씩 삐딱해지는 아들은 결국,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의 공동 주연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아버지의 지나친 권력욕과 아버지를 내세워 권력을 이어가고 싶은 아버지의 신하들, 그런 권력과 차별화를 꾀하며 새로운 질서를 원했던 아들의 대립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부자간의 서투른 소통법이 화를 키운 것은 분명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목적이자 상수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타인도 그 자체로 목적임을 존중하면서 사는 게 또한 윤리다. 이 윤리가 자식에게만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식을 타인으로 여기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적,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씌우고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실망한다. “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만들고 자신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꼴이다.
영화에선 뒤주에 몰래 넣어준 부채를 통해 아버지의 원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부자간의 화해를 암시하는 부분이다. 부챗살처럼 하늘로 날게 하는 것도, 거꾸로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도 부채다. 부채를 밖으로 힘껏 펼칠 때 시원하겠지만 때로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아버지란 이름의 욕망도 그러해야 할까.
아버지가 되고 나서 끼적거린 흔적을 붙인다.
부채
꿈속으로
나른히 빠졌다가
울음 놓고
엉덩이부터 깨어나는 아이.
잠 못 드는 열대야에
부채는
부쳐 주라고 있는 걸
이제야 알았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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