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장에서 상어 만나다 / 정숙
일연과 원효대사, 설총이 태어나기도 한
경산군 자인의 장은 돔베기가 지킨다
바닷바람도 먼데 웬 상어냐
고향 바다 떠나오면서 소금에 절어
씹을수록 쫄깃하고 간간한 갯벌 냄새
콤콤비릿한 시장 바닥 냄새
살면서 간 쓸개 다 태워 버린
내 모습, 자화상이라 설레발을 친다
시절 원망하느라 짜고 쓴맛만 남아
아직 씹히는 맛도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 장돌뱅이로 돌아다니다가
운 좋게 엄마를 만나서
얻은 유리 브로치에 비친 무지개
새파란 바다에 영롱한 햇살
밥그릇 수를 세며 나이 먹는 동안
그 햇살, 그 무지개 다 잃어버렸다
누가 빼앗아 갔느냐
굳은살 박이도록 손에 꼭 쥐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 않고 누가 나를
자인장 상어 눈알로 만들었느냐
맘 놓고 화풀이할 수 있는 내 고향
그래서 친정집 뒷마당 소나무가
엄마가 백수 다 되도록 그 자리 지키는가
-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문학세계사, 2015.
* 교통수단이 좋지 않았던 시절, 뭍에서 갯것을 먹으려면 간을 쳐서(소금에 절여) 옮겨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름난 것 중에 안동 간고등어가 있고 영천 돔배기가 있다. 돔배기는 상어 고기를 도막도막 내서 베어낸 것인데 도막도막 낸 것에서 돔배기로, 여기에 칼로 베어낸 것에 이끌려 돔베기로 두루 쓰인 것 같은데 사전에는 돔배기가 돔발상어의 사투리로 등재되어 다소 엉뚱한 느낌이 있다.
시인의 고향인 경산 자인은 영천에서 가까운 곳이다. 유리 브로치에 비친 햇살과 무지개의 꿈은 살면서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돔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다. 시인이 돔배기를 자화상으로 미는 것은“간 쓸개 다 태워 버린” 세월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씹을수록 쫄깃하고 간간한” 사람 또는 그런 시(詩)에 대한 지향이 있어서다.
풍물과 인심이 변했다손 치더라도 친정어머니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고향은 상어 눈알을 해도 예사로 수용되는 곳이다. 무지개 좇아 멀리 벗어나려 했던 자신이나 무지개 밀쳐두고 주변을 맴도는 자신이나 고향 어머니 품은 언제든 그녀를 편안하게 받아주었을 것이다.
고향도 어머니도 간이 되어 푹 익어야 더 그리운 걸까. 아무려나, 음식도 시(詩)도 간을 쳐야 맛이 나지 않나. “쫄깃하고 간간한” 돔배기 맛보러 영천장에나 가랴.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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