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삼짇날 / 남재만

톰소여와허크 2015. 11. 30. 14:09

경주 세정산방

 

낭도 민박집

삼짇날 / 남재만

 

제비가 울고 있다.

빈 집 추녀 끝에

넋두리 섞어가며

제비가 울고 있다.

그 때 물어다 준

박씨.

흥부네 집에도

놀부네 집에도

하나씩 물어다 준

그 박씨.

그게 그만 뒤바뀐 사실을

이제사 알고,

그 엄청난 실수

뒤늦게 알고,

흥부 빈 집 추녀 끝에 앉아

삼짇날 해종일을

제비가 울고 있다.

 

-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 시문학사, 1985.

 

 

  * 음력 중 중복되는 홀수 날을 길일로 친다. 설, 삼월 삼짇날, 오월 단오, 칠월 칠석날, 구월 중구절(중양절)이 그렇다. 제비는 삼짇날쯤 날아와서 중구절쯤에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길일과 제비의 오가는 것을 굳이 연결한 것은 제비를 상서롭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제비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 착한 흥부에게 장차 똥 무더기나 도깨비가 나올 박 씨를 건넸고, 못된 놀부에게 금은보화를 안겨 줄 박 씨를 물어 줬다는 거다. 안 그래도 놀부가 부모 재산 독차지하고서도 자수성가한 인물로 기림을 받고, 대놓고 부자되세요 인사하는 세상인심에 맞춰 식당 상호도 놀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마당인데 여기에 제동을 걸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부추긴 꼴이다. 흥부는 더 한심하게 되었다. 흥부는 어쩌라고, 한탄이 절로 샌다. 가난한 사람 더욱 욕보이게 생겼으니 제비 낯짝도 뜨거울 게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제비의 실수는 강요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즈음 가난한 사람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자되어 하늘도 손쓸 도리 없는 지경 아닌가. 삼짇날 돌아와도 이제 울어 줄 제비도 없지만, 가난한 사람 복되게 하라는 말 씨 하나 심었다고, 그 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믿는 자유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