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水月觀音圖 / 정진규

톰소여와허크 2016. 4. 11. 15:38

혜허 作, 수월관음도(물방울 관음), 142×61.5.

 

수월관음도, 419.5×245.2.(1310년)

 

水月觀音圖 / 정진규

 

 

  고려 佛畫 水月觀音圖를 보러 갔다 다른 건 보이지 않고 그분의 맨발 하나만 보였다 도톰한 맨발이셨다 그런 맨발을 나는 처음 보았다 연꽃 한 송이 위에 놓이신 그분의 맨발, 요즈음 말로 섹시했다 열려 있었다 들어가 살고 싶었다 버릇없이 나는 만지작거렸다 1310년, 687년 전에도 섹시가 있었다 419.5× 245.2! 장대하셨으나 장대하시지 않음이 거기 있었다 당신을 뵈오려고 전생부터 제가 여기까지 맨발로 걸어왔어요 제 맨발은 많이 상해 있어요 말하려 하자 그분의 손이 내 입술 위에 가만히 얹히었다 무슨 뜻이셨을까 돌아오는 길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함께 갔던 미스 김과 차를 마시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을 뵈오려고 전생부터 제가 여기까지 맨발로 걸어왔어요 그게 화근이었다 순간! 미스 김이 관음보살이 되고 말았다 지울 수 없었다 미스 김은 나를 굳게 믿었다 그날 이후 나는 관음보살 한 분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내 사는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맨발로 나를 마음대로 걸어다니시는 감옥 하나 지어드렸다 실은 관음보살께서 미스 김이 되셨다

 

- 『도둑이 다녀가셨다』, 세계사, 2000.

 

 

*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수월관음도(1310년, 419.5×245.2)는 2009년 통도사에서 전시되기도 했지만, 시 발표년도로 보아 1995년 호암미술관 개최 대고려국보전에서 수월관음도를 처음 만났을 것이다.

수월관음도(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있으면 양류관음상이라고도 함)는 보타락가산의 관음보살이 구도를 위해 찾아온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하는 장면이 주로 그려져 있는데, 대체로 색채가 화려하고, 풍기는 이미지가 여성스럽다. 시인은 관음보살의 맨발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섹시에 이끌린 것도 있겠지만 살집이 붙은 모성에 상처가 많은 자신의 맨발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법하다.

이런 바람이 말실수로, 아니면 운명적으로, 그도 아니면 보살의 자비행으로 미스 김에게 옮겨가서 이루어지는 게 퍽 재미난다. 빨래하는 처녀로 현신한 보살을 원효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눈치가 빠른 시인은 미스 김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챈다. “나를 마음대로 걸어다니시는” 심지어 “감옥”까지 말하는 불경(不敬)이 엄살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일들이 감옥 짓는 일이라고도 하지만 아무것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더 만만찮고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이다.

정진규 시인처럼 관음보살의 발에 마음이 홀린 또 한 명의 시인이 있다. “바람의 길을 오래 생각하던 물방울 안에서/ 물방울 밖으로 빠져 나온/ 관음의 젖은 발목을 본 것도 같다/ 마음이 관음의 버들잎만큼/ 움직이던 생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일까” (신현락, ‘물방울관음’(수월관음도, 혜허 작) 부분, 『히말라야 독수리』) 라고 노래했던 시인은 아마도,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를 관람하고 시를 얻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수월관음도를 보고, 자기만의 수월관음도를 빚은 두 편의 시가 그림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공부를 더했을 때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임을 배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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