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밥 / 최진
저녁밥 때 지나
앞집엔 배달을
뒷집엔 고추짐 받으러 왔는데
들기름 냄새 가득한 방에 들러
누구 생일이니껴?
미역국 냄새 고소하니더
한마디에
손주 새끼 낳아준 며느리 챙기듯
택배기사 앞에 미역국 출렁인다
이 집 조씨 말고 저 집 조씨 껀데
여따 놔 뚜고 훌쩍 가면 우야니껴!
아랫집 할매가
잘못 온 물건을 일러 주러 왔다가
미역국만 그득한 밥상을 보고선
빈 밥그릇을 주워다
제 집의 남은 밥을 담아 온다
기사 양반 이 집에 밥 모자란 거 알고
식은 밥 남은 우리 집에
물건 갖다 놨다만
한참을 웃다
두 집 밥 말은 미역국 국사발에
짜증만 낳던 고달픈 하루
몸조리한다
- 『배달 일기』, 한티재, 2016.
* 시인은 오지 마을을 도는 택배 기사다. 시집 제목처럼 실제 체험이 반영된 시 같은 일기, 일기 같은 시를 읽다 보면 스스로 택배 기사가 되어 현장을 도는 느낌이다. 심지어 이 마을 저 마을, 이 할매 저 할매 곁으로 여행하는 기분마저 드는 데 아마도 시인이 겪은 에피소드가 일의 고됨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재미나기도 하고 자별하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택배 기사하려고 서로 다투지 않는 걸 보면 이런 재미와 여유는 이웃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시인의 기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용한 시처럼 두 집 밥을 먹는 택배 기사는 참 배부르겠다. 먹을 복 많은 기사가 부러운 것도 있지만, 잘못 배달된 물건을 탓하지 않고 실수를 웃음으로 넘기면서 밥 한 그릇 더 먹이려는 인심이 정작 부러운 것이다. 시인은 “저녁이나 자시고 가시지……”(‘오기 웃골 할미꽃’)라는 말을 맘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마춤 집에 커피 떨어졌니더/ 가다 이거 보태 맛난 거 사드소”(‘꼬깃시’)라며 속곳 주머니에서 꺼낸 천 원 쪼가리와 할매를 각각의 시 한 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두 집 밥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해야겠다.
여담 하나 붙이자면, 시인이 전기장판 깔아주고 꺼먹눈 할매로부터 받았다는 유통기한 지난 요구르트에 대해서다. 아마 할매가 손주에게는 이 요구르트를 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할매와 시인을 이간질하는 나는 한 집 밥도 못 먹을 위인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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