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선생님 / 정양
중간고사 화학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 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혔다 백발성성한
지금도 그 점수를 믿지 않지만
이 세상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아지는 것도
나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
- 『헛디디며 헛짚으며』, 모악, 2016.
* 국어 시험엔 정답은 없고 다수가 동의하는 답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소수의 반응이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또, 보편적인 경향이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답을 찾는다고 해도 그것도 모범 답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지 바로 정답이라고 내세울 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반응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두둔하면서도 답은 하나를 골라서 동그라미 친다. 점수를 통해서 순위를 매기는 상대평가 대신, 과정이나 성취를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기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공정성이나 형평성 시비가 나타날 걱정이 있다.
위 시의 화학 선생님이 그렇다. 한 학생의 반응에 따라 기준이 만들어지고, 최고 점수를 주었으니 공정성을 이만저만 깬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소신껏 결례한 학생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반응하면서 시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학생의 기를 살려주려는 의도까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라도 점수를 고친다는 게 그만 깜박해서 생긴 해프닝이 사건의 전말이 아닐까 싶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화학 선생님은 그런 상식을 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겠지만 화학은 제목부터 변하는 것을 공부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점수로 서열화하려는 완고한 금기를 선생님 스스로 보란 듯이 깨면서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학생이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나 기대치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앞 사람의 길을 존중하되,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제자의 도리이기도 하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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