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몸 / 고희림
우리가 열사의 산에 오르는 것은
열사의 몸을 섬기기 위함이다
열사는 몸으로 살았다
가치가 자신의 날개를 달고 이탈하면
동냥 밥그릇이 되었다가
비싼 넥타이핀이 되었다가
당신의 몸은 조화(造花)처럼 늙어갈 뿐
누구는 엿가락처럼 늘려 이를 가치라 하고
누구는 돌덩이처럼 뭉쳐 이를 가치라 한다
이미 몸을 이탈한 가치는 유령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머리 위를 떠돌며
음식을 씹는 이빨과 혀로
나는 가치다, 나는 가치이므로 가치다
라고 외친다
가치란 원래 몸에 담겨 있었으며
그럴 때만 가치이다
열사는 몸이다
고난을 당한 건 몸이다
태어난 만큼이나 강한 물음을 가진 몸
열사는 오직 몸으로 그 토대를 삼았다
다시 우리는 열사의 몸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른다
- 『대가리』, 삶창, 2016.
* 맹자 어느 구절에 항산(恒産)과 항심(恒心)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는 항산(‘생업’)이 없어도 항심(‘도덕적으로 떳떳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일반 서민은 그게 어렵다는 이야기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양심을 숨기거나 저버릴 정도로 치사하고 절박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생업에 구애됨 없이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게 선비의 자질이란 거다. 그런 열렬한 마음을 내는 사람을 열사(烈士)라 해도 좋겠다.
지사는 뜻이 모자라면 변절할 수 있고, 의사는 의로움이 얕으면 타락할 수 있다. 투사는 싸움이 없으면 평범해질 수 있고, 열사는 열렬한 마음을 잃으면 미적지근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을 어쩌지 못하고 다른 가치에 전력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대놓고 보면 “동냥 밥그릇”과 “넥타이핀”에 유인된 면이 있을 텐데 이를 인정하는 건 당사자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개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기 합리화란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킬 수밖에 없으리라.
이처럼 남을 위해 열렬하지 못한 가짜 열사를 경계해야겠지만, 가치가 다른 쪽을 존중하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변절로 몰아가는 일도 조심스럽다. 좌우 이념의 이쪽저쪽을 한달음에 건너는 수상한 행동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지만 그 경계란 것이 언제든 모호하긴 하다.
이 애매함, 이 모호함 속에 시인이 믿은 구석은 열사의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몸으로 당하고 몸으로 깨우친 것을 실천하려는 사람, 그 정직함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 항상심(恒常心)을 갖고 이 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이 모든 열사는 땀을 흘려야 비로소 만날 수 있을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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