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의 화조묘구도 (花鳥描狗圖) / 강영은
고양이 한 마리, 눈을 비비고 입을 훔치는 것이 날카로운 고요를 벼리어내니 톱날을 뺀 발톱은 얼마나 부드러운 연장이냐
가느다란 떨림이 가르랑거리는 목덜미를 넘어서니 비어있으면서 꽉 차 있는 어떤 고요가 고양이의 발톱을 연장으로 삼은 것이냐
타지 않는 형상을 배운 어떤 고요가 천만 번 움직여도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발톱과 교감하는 것이며 간섭하는 것이냐
잔잔한 파동이 스치고 간 빈집의 고요는 세수하던 손이 사라지면 그뿐이지만 내 마음의 무너진 담장을 지키는 당신도 한때는 부드러운 연장이어서
모란 꽃그늘에 기대어 천만년 피고 지던 어제가 지척인데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는 그리움이란, 어떤 발톱 속에 들어 있는 고요한 연장이냐
- 『마고의 항아리』, 현대시학사, 2015.
* 이암은 강아지, 매 등 동물 그림을 잘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화조묘구도는 병풍용 그림으로 짐작되는데 그 중에 평양박물관에 소장된 2점이 시인의 눈에 밟혔나 보다. 그림 한 점은 새라도 잡으려는 것인지 동백나무 줄기를 움켜잡고 있는 고양이 그림이고 다른 한 점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누렁이와 기세 대결을 벌리는 고양이 모습이다.
둘 다 고양이가 발톱을 노출시킬 만한 장면이긴 한데, 상대를 그어 대거나 하다못해 허공을 할퀴어 댈 발톱을 시인은 짐짓 못 본 체한다. 대신, 발톱 속에 숨어 있는 고요에서 많은 것을 본다. 고양이의 발톱은 일촉즉발의 날카로움을 예비한 것이긴 하지만, 그걸 견디는 힘이 부드러움이다. 시인 역시, 끊임없는 교감과 간섭으로 이 부드러움을 자신의 방편으로, 연장으로 삼으려는 마음이 없지 않은 것이다.
“내 마음의 무너진 담장”을 지키는 것도 누군가의 “부드러운 연장”임을 말하지만 내 마음도, 그 연장도 항상 일정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발톱을 숨기는 게 능사만은 아닌 것을 생이 우리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비어있으면서 꽉 차 있는” 역설처럼 생은 간단하지 않고 시인의 노래도 그럴 테니 그리움에 대해서도 이렇게 부언할 수 있겠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길이 이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마음 가는 곳이 없는 곳에서 다시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을 또 다르게 말하고, 또 다르게 읽고 싶은 마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나무를, 새를, 개를 한참 쳐다보지만 노래는 그냥 얻어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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