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 쓴 문어 / 우정연
울릉도 저동항 두 번째 골목 길섶에 갯바람에 몸을 말리는 삿갓 쓴 문어
유유히 걷던 아득한 곳 멀리 두고 비바람 몰아치는 이역만리, 예서 무얼 하시나
아침부터 막걸리만 죽이고 있는 뱃길 묶인 섬에 든 사슴 같은 사람들
덕장에 걸린 황태 눈빛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사 한 점 한 점 온몸을 떼어주는 중이다
두 팔과 한 쪽 다리를 내어주시고 먹다 남긴 찬장 안의 밥처럼 꾸벅꾸벅 졸고 계시다
- 『송광사 가는 길』, 불교문예, 2016.
* 문어는 어족답지 않게 문(文)이란 칭호를 받고 있다. 먹물을 품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여기고 있었는데, 삿갓 쓴 듯한 머리 스타일도 한몫했을 것 같다. 실제 머리로 여기고 있는 부분은 배에 해당한다고 하니, 문어는 머리보다 배가 점잖아 보이는 어류다.
인간이 내민 미끼를 의심치 않고 단지에 참선하려 들었다가 변을 당하긴 하지만, 문어의 보시 행은 다른 족속들보다 더 가열한 데가 있다. 일을 나가지 못하고 “막걸리만 죽이”는 가난한 이웃들의 허한 속을 달래되, 수족을 하나하나씩 떼어내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니 살신성인의 경지와 무엇이 다르겠나 싶은 거다.
제목부터 시종일관 웃음기 머문 시이긴 하지만 틀어진 삿갓 쓰고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성자 앞에 자신의 앞섶은 어떤지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제 배만 부르겠다는 욕심으로 어쩌면,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난장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먹물 든 사람부터 꼼꼼 돌아보면 좋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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