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유천지비인간 / 이승하
때 되어 밥 주면 밥을 먹고
때 되어 약 주면 약을 먹고
한없이 선량해진 누이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으니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니
네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병동은
천국인가
비인간(非人間)들의 별유천지(別有天地)인가
병동 바깥 저 비좁은 지상은
지옥인가
굶주린 야수들의 숲인가
무인도 같은 표정으로
유인원 같은 낯을 들고
아, 매일 보아도 낯선 얼굴
얼굴들, 저 가면들
“아픈 데는 없니?” 고개를 끄덕끄덕
아무렴 아프지 않겠지 아픈 데가 없어
너는 산 주검인 동시에 죽은 생령(生靈)이니
확인하러 다시 오마 누이야
지금부터 한 달 뒤가
종말의 날 이후가 아니라면
- 『감시와 처벌의 나날』, 실천문학사, 2016.
* 시인에게 누이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오던/ 개구쟁이”(‘누이의 초상Ⅰ’)고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던 “내 사랑 내 자랑”(‘누이의 초상Ⅱ’)이었다. 그런 누이가 세상에 대한 말문을 닫아버리고 폐쇄병동까지 오게 되었나 보다. 세상의 아픈 누이, 아픈 동생, 아픈 누구누구가 병동에 갇혀 있는 동안 연고 있는 바깥의 사람 또한 그만한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시인이 보는 바깥세상은 “얼굴들, 저 가면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그때그때의 가면을 바꾸어 써야 하는 존재다. 집 나갈 때 쓴 가면이 집 들어와서 벗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얼굴이 가면이 되어 스스로 구별 못하는 지경도 있겠다. 위선이든 위악이든 그게 가면인 줄도 모르고 빌려 쓴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믿고 살지는 않는지, 그야말로 깨지지 않는 탈바가지를 자랑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지 의심을 두는 것이다.
시인은 누이가 있는 이곳 병동이 오히려, 가면을 벗은 인간이 머무는 곳인 줄 안다. 가면을 벗은 사람은 가면을 더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가면이 된 얼굴은 벗은 가면이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계를 나누어 한쪽을 안 보는 세상이 되고 있다. 별별(別別) 세상에 별천지(別天地)는 어느 쪽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누이에 대한 사랑, 누이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채, 경계 이쪽에서 경계 저쪽으로 한 달에 한 번 넘어가는 시인도 답을 갖고 있을 성싶지 않다. 다만 인간과 비인간(非人間) 사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민만 별빛이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벚나무의 시간 / 김명리 (0) | 2016.07.02 |
---|---|
돌멩이/ 박수빈 (0) | 2016.06.30 |
삼수갑산 /윤중목 (0) | 2016.06.19 |
삿갓 쓴 문어 / 우정연 (0) | 2016.06.11 |
碧巖錄을 읽다 17 / 노태맹 (0) | 201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