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시를 쓸 때 / 오규원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리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문패도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지친 잠은 내 옆에 쓰러지자마자 몸을 웅크리고
가느다랗게 코를 곤다.
나의 잠은 어디 있는가.
나의 잠은 방문까지는 왔다가 되돌아가는지
방 밖에서는 가끔
모래알 허물어지는 소리만 보내온다.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잠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남의 잠은 잠의 꿈이고
나의 잠은 잠의 현실이라고
나의 잠은 나를 위해
꺼이꺼이 울면서 어디로 갔는가.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
* 밤잠이 줄고 꾸벅잠이 조금씩 느는 요즘이다. 곤잠에 들었다가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깰 때 조금 전에 코 곤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만 같다. 시인 역시, 지친 잠에 가느다랗게 코를 고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시인은 잠에서 갓 깬 상태가 아니라 처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각성한 상태긴 하다.
‘잠든 나’와 ‘지켜보는 나’의 분별과 대립이란 점에서 일종의 자아분열이지만 ‘잠들지 못한 나’나 ‘잠든 나’가 초점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잠”이 관건이다. “나의 잠”은 나에게 오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나의 잠”은 죽음과 현실에 밀착되어 있다. 이런 “나의 잠”은 “나의 시”를 매개한다. “나의 잠”이 “남의 잠”과 구별되듯이 “나의 시”도 ‘남의 시’와 차별화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는 그런 예민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잠을 쫓고 있는 거라면 천생 시인답다고 시인해도 좋을 것이다.
종이 한 장 펴 놓고 발칫잠 자다가도 “나의 시” 한 줄 끼적이면 좋을 것을 점점 남의 잠만 꾸러 다니는 건 아닌지 이 밤이 골똘해진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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