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1890년경)
떨림을 놓치다 / 서양숙
당신, 떨림을 아는지요
미루나무 둥치
나뭇잎의 떨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떠나보내고 맙니다
가장 작은 떨림까지도
그러니까 웃음의 떨림까지도
들어야 하는 것을 말입니다
커피 빈에 갔을 때였어요
주문하고 받아오는 플라스틱 번호표가 부르르 떨자
여자 친구 몸에 갖다 대며 깔깔깔, 떨림을 건네주는
남자를 보았아요
작은 떨림이 들려주는 떨림의 웃음들
당신, 떨어지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미루나무 가지 마구 흔들 때
그 떨림이 미루나무 뿌리까지 흔들리게 했던 것
당신, 혹 알았는지요
- 『너무 오래 걸었다』, 문학의전당, 2012.
* 잘 정리 안 되는 나무 이름 하나가 미루나무다. 처음에 불리던 미류(美柳)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미국에서 건너온 버드나무 종류일 텐데, 들어올 때 학명 그대로 포플러란 이름도 익숙한 편이다. 겨드랑이를 귀에 붙이고 팔을 든 것처럼 가지가 위로 향하는 수형이라면 미루나무가 아니고 양버들 나무일 확률이 높다. 또, 미루나무와 비슷하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 땅에 적응한 토종 포플러를 사시나무로 불러왔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백양나무, 황철나무라고도 하니 족보 따지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포플러 가족이 조금씩 다른 가운데 비슷한 점이 있다면, 잎자루가 제법 길어 바람이 불면 떨림 현상이 있다는 거다. 바람을 통과시키거나 부딪치게 하면서 팔랑팔랑하는 이파리, 햇빛을 통과시키거나 반사시키면서 반짝반짝하는 잎잎이 다 떨림이 있다.
떨림!, 시인은 그 떨림 아래 있는 거다. 미루나무의 떨림이 더 유난하여 선택받긴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떨림이나 자신 안의 떨림에 대한 이해다. “가장 작은 떨림”이나 “웃음의 떨림”에도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마음이나 메시지가 있을 것인데 그 떨림을 알아주지 못하면 연애는커녕 겉도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때로 사납게 부는 바람에 나무가 휘청이고 나뭇잎이 위태롭게 떠는 날도 있을 것인데 그 나뭇잎을 두고 시인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두려움”으로 읽는다. 혈육이든 이성 간의 일이든 사랑이 올 때처럼 이별 또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고, 사뭇 떨리는 순간도 있을 테다. 그때의 떨림은 어느 한 쪽의 몫만이 아님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까지 흔들리는 존재가 따로 있음을 시인을 통해 알아듣는다.
미루나무 곁에 오면 미루지 말고 물어봐야겠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림이 있고, 바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떨림이 먼저 와 있기도 한 것을 “당신, 혹 알았는지요”.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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