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잠자리의 눈 / 오인태

톰소여와허크 2016. 9. 16. 08:25

잠자리의 눈 / 오인태


그때,


하동 평사리 용이네 집이던가 섬돌에 우두커니 앉아, 바지랑대에 앉은 잠자리 눈과 딱 마주쳤는데


적이 쳐다보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주앉아 오래 눈을 맞춘 적이 없는 것이었다


- 『별을 의심하다』, 애지, 2011.



  * 잠자리는 머리의 대부분이 눈이니 눈 맞추기도 좋았겠다. 물론, 잠자리 겹눈 하나엔 일 만에서 삼 만에 가까운 낱눈이 모여 있다니 그 중에 이쪽을 감지하기 위해 동원된 눈의 개수는 얼마 안 될 수도 있다. 한 쪽이 온 신경을 집중해도 다른 한 쪽이 무신경에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쪽에서 사랑의 눈길을 건네는데 저쪽에서 딴 데를 본다면 낭패스런 일이긴 하다.

『토지』에 나오는 이용이란 인물은 농부면서 고고한 학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강청댁과 살면서 월선을 생각하고, 임이네와 살면서 월선을 그리워한다. 강청댁과 임이네 입장에서는 딴 데 보는 남자를 쳐다보는 데 지친 나머지, 악을 쓰거나 돈으로 마음을 돌리거나 한다. 서로 마주보기를 원하면서도 어긋나기만 했던 이용과 월선의 사랑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좋아라 미워라 하지만 잠자리 왕방울 같은 눈으로 보면, 다 불쌍한 존재다. 강청댁을 생각해도 눈물이, 임이네를 생각해도 눈물이, 용이를 생각해도 눈물이, 월선이를 생각하면 더 눈물이 난다.

시인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는데 소설 속 인물을 생각했는지, 소설을 빼닮은 현실의 장면을 떠올렸는지 알 수 없으나 잠자리 눈이 발단이 되었다. 눈을 오래오래 마주치면서 생긴 일이다. 초점이 흐려지고 셈이 무뎌지면서 영혼의 눈이 촉촉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눈을 마주했다는 것도 이쪽의 생각일 뿐 상대는 여전히 딴 데를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딴 데를 보는 게 낭패가 아니라, 어느 쪽도 보려고 하지 않는 게 그야말로 낭패가 아닌가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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