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온금동 / 김경애

톰소여와허크 2016. 11. 11. 22:31


온금동 溫錦洞/ 김경애

 

 

다순구미라고도 불리는 온금동

계단 따라 구불구불 오르는 좁은 골목길

꼭대기 근처 어디쯤엔가 말숙이의 자취방이 있었다.

바다에 나가 집 비우는 날이 많던

주인집 아들 광남이와 친구들…….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물고기처럼 온금동 골목을 쏘다녔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기 궤짝 같은 집들.

퀴퀴한 생선 비린내며 그물에 널린 고기들.

갯물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가 살가웠다.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만선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온 동네가 잔칫집처럼 떠들썩했다.

생선을 포식한 개들은 며칠 헛배를 앓기도 했다.

마당 가득 바다가 들어와 있는

진도의 조도 넘어 모도라는 작은 섬이

고향이라는 말숙이는 이제

세련된 서울 아주머니가 되었다.

한때 이천에서 나이를 서너 살이나 높여 살며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미숙 언니가

오빠라고 불렀던 내 동창생 광남이 소식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비어 있는 집들이 더 많아

나른한 햇살만 서럽게 다녀가는 온금동에 가면,

집집마다 금이 간 유리창에서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반짝인다.

 

 

* 온금동溫錦洞 : 유달산 자락에 위치한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달동네다.

 

-『가족사진』, 천년의시작, 2015.

 

  - 어떤 책을 읽게 되면 새로 궁금해지거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장소가 생기기도 하는데, 시집을 읽고 난 지금, 다순구미가 그런 곳이다. 다순구미는 다습고 후미진 곳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이란 의미를 더해 온금동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배가 들어오는 선착장(바닷물이 한쪽만 째고 들어오는 형세라 해서 째보선창이 있었으나 지금은 매립되어 없어짐) 가까운 동네로 산비탈에 터를 잡고 길을 이으면서 형성된 어촌 달동네다.

   광남이, 말숙이, 미숙 언니와 더불어 “물고기처럼 온금동 골목을 쏘다녔”다고 하니 이곳은 엔간히 따습기도 하고 더러 그늘지기도 했을 유년의 기억 창고 같은 곳이리라. 힘이 센 기억은 옛날을 놓고 있지 않겠지만 그 옛날은 이미 “비어 있는 집”이나 “금이 간 유리창”으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거나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는 중일 테다. 모천회귀를 바라는 연어의 꿈이 가물가물하는 순간이다.

   온금동의 미래는 불확실 속에 던져져 있다. 재개발 지구가 되어 번듯한 주택지로 거듭날 수도 있고, 통영 동피랑, 묵호 등대, 부산 감천 등의 벽화 마을처럼 관광지로 재단장되는 길도 있을 수 있다. 어떤 도시계획이든 간에 실제 주거인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의 특수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골목이 갖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야 할 줄 안다.

   그리하여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환영이 아니라 현실로 되살아날 때 시인은 도둑맞은 유년을 다시 찾게 될 것이고, 그 2세들이 또한 꿈을 꾸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다스운 불빛을 좇아 귀향하게 될 것이다. (이동훈)

 
































* 그림은 조순현, ‘온금동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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