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귀뚜라미/ 조두섭

톰소여와허크 2016. 11. 24. 17:15



*사진은 오천원권 신사임담 초충도


귀뚜라미 / 조두섭


별 뜨면 새들은 깃을 접지만

귀뚜라미는

한천(寒天)의 길을 찾아

등불을 들고

은사시나무 숲을 헤맨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물소리 점점 허리가 야위어가고

산속에 길이 있고 또 길이 있어

어느 것이 귀뚜라미 길이고

어느 것이 싸락눈 흐르는 골짝이고 눈물 묻는 계곡이냐

온 산을 뒤지는 바람 서걱이는 발자국 소리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점점 깊어지는 검은 산

벼랑 끝에

별 하나 앞니를 물고 울고 있다


-『눈물이 강물보다 깊어 건너지 못하고』, 시와시학사, 1995.



   * 귀뚜라미에게 세도 주지 않았는데 5층 아파트 베란다 화분까지 와서 잠을 방해한 적이 있다. 불 켜고 다가가면 조용-, 불 끄고 자려면 귀뚜르르-. 몇 번 잠을 설친 끝에 겨우, 녀석을 발견하고 체포까지 해서 밖으로 추방했던 기억이 있다.

   가수 안치환의 노래로 사랑받았던 ‘귀뚜라미’도 숲속에 있지 못하고 도심 지하도 어둠에 산다. 이 노래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귀뚜라미> 부분)라는 나희덕의 시를 노랫말로 가져온 것이다. 지하 구석진 자리의 귀뚜라미는 소외된, 억압받는 서민의 모습을 닮았다. 삶의 여하한 악조건 속에서도 귀뚜라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거나, 자기 뜻을 외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조두섭 시인의 귀뚜라미 역시, 울음소리만 크지 않을 뿐 “한천(寒天)의 길을 찾아” 간다는 점에서 지하의 귀뚜라미처럼 그 삶이 편안하지도 무난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조건을 벗어나 길로 나서서 생의 의미를 찾는 데 가열한 모습이다. 존재를 가장 서늘하게 인식하게 해줄 벼랑에 닿아서야 귀뚜라미는 별을 맞닥뜨린다.

   여기서 귀뚜라미를 존재자 자신으로 본다면 별은 존재자가 지향하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앞니를 물고 울고 있다”고 할 만큼 그 거리는 가깝다. 이 시집에 자주 나오는, “초년에 소박맞은”(별똥), “하도 울어서/ 망개처럼/ 눈이 빨개진”(<점박이별>), “장다리밭에 허기져/ 쓰러진”(<초저녁별>) 누이의 이미지가 별과 겹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 시를 읽는 데 그다지 요긴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존재자의 눈물까지 받아서 기꺼이 호응해주는 존재는 누굴까 궁리하는 순간이 곧, 이 시의 서정성이 살아나는 대목이다. 그 서정으로 베란다에서 추방된 귀뚜라미 걱정도 뒤늦게 해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안치환의 노래를 듣는다.

   귀뚜루루루 ----- 귀뚜루루루 -----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 갈 수 있을까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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