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안녕 주정뱅이

톰소여와허크 2016. 11. 22. 19:17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신형철은 소설집 해설에서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권여선의 소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요즘의 나에게 문학과 관련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평을 맺는다.

   소설에서 느낀 인상도 그렇다. 삶과 인물의 고통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고통도 수용하지만 어떤 위로의 감정도 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말로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행에 마음이 저리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뭔가가 삶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 ‘봄밤’은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수환과 영경은 각각 배우자와 시댁으로부터 상처 입고 이혼한 경력이 있다. 마흔 셋 봄에 두 사람은 만나 재혼했지만, 이번엔 수환이 건강보험증 미비 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몸이 굳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고, 영경은 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알콜중독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소설 ‘카메라’도 삶의 불가해한 장난질과 그로 인한 고통 내지 어쩔 수 없음이 소재다. 문정은 남자 친구 관주가 어느 날 연락을 끊고 본인도 더 미련을 갖지 않아서 이별의 고통을 견디면 산다. 우연히 관주의 누이로부터 관주가 문정에게 선물하려는 카메라를 갖고 오다가 골목에서 변을 당한 걸 알게 된다. 문정이 카메라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관주가 카메라를 사지 않았다면, 관주가 불법체류자를 카메라로 찍지 않았더라면, 하필 새로 깐 돌길에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문정과 관후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지금의 고통과는 다른, 삶의 재미와 고통에 직면하고 또 지나가게 될 것이다.

   저자는 술을 좋아한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단다. 소설에 등장하는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도 많을 것이다. 한 곳에 깊게 천착하는 버릇이겠지만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기를 바라는 건 소설가에 대한 결례일지도 모르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