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춘희' 그림으로 인용된 삽화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14.
- 정부 주도로 대극장을 짓게 되고, 그 책임 시공을 맡은 사람이 우연히 만난 벽돌 한 장을 들고 벽돌을 찍어낸 공장을 찾아나서는 이야기가 소설 마무리 부분에 있다. 그림이 그려진 벽돌 한 장, 이 소설의 첫 구상은 이것이었는지 모른다.
벽돌의 주인인 춘희. 벙어리 춘희는 코끼리 점보와 있었던 어린 시절과 트럭 운전수와의 짧은 행복 그리고 그 전후의 비극적 서사의 한 축이다. 서사의 중심은 춘희의 어머니인 금복의 일대기다. 금복은 여러 남자를 지나며 그 남자들이 다 불행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남자가 되려고 했던 인물이다. 금복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노파의 돈다발로 벽돌공장을 짓게 되고, 거기서 文이란 남자를 한때의 정인으로 삼는다. 文은 금복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대신 벽돌 굽는 일에 매진하고 춘희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역할이며, 금복과의 사랑이 있었던 장소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금복은 무의식 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던 고래 형태를 살려 영화관을 짓고, 그토록 좋아했던 스크린 앞에서 노파의 저주대로 죽음을 당했으니, 이 소설은 타고난 개성대로 곡절 많은 삶을 살되 운명에 불가항력적으로 당하고 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늘을 날아가는 코끼리와 춘희의 우정으로 마감되는 이 소설은 설화와 판타지와 재담이 어우러진, 자칫 공허하기 쉬운 이야기이지만 어촌 마을의 모습이라든지 벽돌 제작이라든지 감옥 생활이라든지 하는 리얼리티가 이를 상쇄시켜 주고 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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