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 민구식
놀다가 집 와선 구정물 한 바께스에 겨 타서
뒷산 매 둔 소 멕이거라
놀다가 도야지 쌀겨도 풀어주고
닭 모이는 저녁에 주구
놀다 잊지 말구 강아지 밥과 염생이 멕이도 주거라
사람만 쳐다보는 짐승들 구박하문 죄 받는다
놀다가 혹시나 소나기 옴 얼릉 달려와서 말리던 거 거두고
놀다 해거름 됨 엄니 널어둔 빨래 흙 묻히지 말고 걷고
놀다 와서는 큰 아궁이 물도 뎁혀 놓고
마당도 쓸어야 하는데…
논다고 밤나무에 오름 혼난다. 떨어진 거만 주워야 한다
놀아도 정서방네 아들 하고는 놀지 말거라
갸네 삼밭에는 얼씬도 말고, 그눔네
밭은 지나만 가도 도둑놈 되능겨
놀다가 우체부 보문 인사 잘 하고서 우리집 편지 없능가 꼭 물어 보거라
군대 간 느그 형 편지 올껴
아들 데려다가 논다고 담배 건조실 시렁에 바다리* 집 건들지 말고
놀다가 배고픔 밭에 오이 따 묵던가
놀지만 말고… 알았냐?
‘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서 담배 한 대 더 피워 무시곤
날 한참 흘겨보시다가 지게를 지셨다
나는 맨날 그렇게 놀았다
* 바다리 : 말벌.
- 『가랑잎 통신』,우리시진흥회&도서출판 움, 2016.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는 아이들이 모래집을 지으며 부르던 노래다. 아이들은 모래만 있으면 지치지도 않고 논다. 이 시를 읽은 느낌도 한참 놀고 난 뒤의 개운함이다. 되풀이되는 놀다, 놀다가, 놀아도, 놀았다 등의 말에 리듬을 타면서 마음이 덩달아 놀아서다.
내용인 즉, 볼일 나가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해야 할 일거리를 일러주며 놀지만 말고 일도 좀 하라는 것이다. 당부하는 일의 양이 적어 보이지 않는데, 그 일이란 게 마음을 무겁게 눌러 오는 것이 아니라 놀이처럼 흥이 배여 있다. 아마, 해야 할 공부나 숙제를 이런 식으로 줄줄이 내놓았다면 아이는 벽에다 머리 박고 싶은 충동을 견뎌야 할 거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일도 놀이처럼 신난다. 일 자체가 놀이가 된다면 굳이 주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지만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일에 대한 부담에 쫓긴 경우가 많다. 시인의 경우는, “맨날 그렇게 놀았다”라고 했으니 이미 일과 놀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호머 루덴스의 면모를 보여준다. 시를 갖고 노는 유희적 일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부모의 당부 속엔 “짐승들 구박하문 죄 받는다”든지, “우체부 보문 인사 잘 하고”라 든지 하는 인성교육 사회교육의 씨도 들어 있다. 씨를 실하게 키워 열매를 맺게 하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얼마큼 성장해줄지 늘 걱정이다. “미덥지 않아”, “한참 흘겨보시다”는 것도 그런 싹수가 있나 없나 살피는 것이다. 아버지의 잔소리도 걱정 반, 어머니의 버릇소리도 걱정 반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걱정을 사면서 아이는 아무 걱정 없이 잘 놀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왜 하필 두껍이인지, 두껍이는 왜 헌집을 갖고 새집을 내놓아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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