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되피절 부처님 / 민영

톰소여와허크 2017. 1. 15. 13:53




되피절* 부처님 / 민영



내 어린 시절

한다리 건너 관우리 지나

되피절 부처님 찾아가던 길은

초록빛 비단의 꿈길이었네.


바늘에 찔린 오른손가락

왼손으로 지그시 감싸 쥐시고

이승의 새빨간 노을을 보며

안쓰러이 웃으시던 되피절 부처님.


내 고향 철원이

毛乙冬非라 불리던 아득한 옛날

가난한 집 아이들 누더기옷을

꿰매주시다 다친 손가락.


그 손에서 흘러내린 자비의 피가

싸움에 지친 마음에 연꽃을 피워

철원 평야 매운바람 거두어 가고

통일의 봄볕을 비쳐주소서!


* 되피절 부처님은 민통선 안에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의 비로자나불을 뜻한다. 사변 전만 하더라도 철원 사람 모두의 원찰(願刹)이었다.


- 『流沙를 바라보며』, 창작과비평사, 1996.


- 고구려시절 철원(鐵原)은 철원(鐵圓) 또는 모을동비(毛乙冬非)라 불렀다는 데, 이두식 표기로 짐작되는 모을동비란 말은 철원(鐵圓)과 의미가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걸로 짐작할 뿐 고증이 어려운지 해석이 분분하다. 이처럼 지명 어원도 짐작하기 어려운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 사이 불화와 나라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통과 미망 속에 구원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 또 민심을 수습하려는 의도가 모여서 비로자나불로 결실했을 것이다.

박종두의 '절, 그 속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리 문화재들'을 펴보니, 비로자나불은 우주 삼라만상을 관장하여 화엄종에서 주불로 모시는 부처며, 비로자나불을 안치한 전각을 비로전, 대적광전, 대광명전, 화엄전으로 부른단다. 왼손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검지를 감싼 모양인 지권인을 수인으로 하고 있기에 다른 부처와 쉽게 구별된다고도 했는데, 시인이 주목한 게 바로 이 수인이다. 시인은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을 반대로 말하고 있어 실수인가 싶기도 했지만, 주체 입장인지 객체 입장인지에 따라 좌우는 달라질 수 있고, 실수나 의도가 있는 것이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재미보다 더한 감동은, 그 수인이 "가난한 집 아이들 누더기옷을 / 꿰매주시다 다친 손가락"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앞서 박종두의 글에는 지권인이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뜻으로 보고 있다. 세운 둘째손가락은 중생을 가리키고 이 손가락을 감싼 위의 손바닥은 법을 나타낸다고도 했는데 이런 법의 실천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한 바느질이 아닌가 싶다. 다친 손을 감싸는 게 왼손이면 어떻고 오른손이면 어떤가. 남이 잡지 않으면 스스로 다친 손을 잡는 게 지혜일 것이다. 자비도 통일도 다친 손, 다친 마음을 기꺼이 잡으려는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인 줄 안다.

사진으로 보는 비로자나불은 연꽃 좌대에 앉아 다친 손가락을 잡고 있다. 남이 안 볼 때 호-, 입김을 불기도 할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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