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space_k_/40210375893
쩔쩔 / 성선경
청사포 청사포
나는 사랑을 말하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청사포 청사포
푸른 뱀이면 어떻고
푸른 모래면 어떠랴
나는 자꾸 사랑에 눈이 가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천년에 한 번
백년에 한 번 달이 기우는데
청사포 청사포 물결이 밀리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 『파랑은 어디서 왔나』,서정시학,2017.
* “해운대를 지나서 달맞이 고개에서/ 청사포를 내려보면, 여인아/ 귓가에 간지럽던 너의 속사임/ 아직도 물결 위에 찰랑이는데 찰랑거리는데”. 가수 최백호가 고향 마을의 여인을 생각하며 곡을 붙인 노래‘청사포’의 마지막 구절이다. 가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시인 역시, 청사포에 못 잊을 사연이 있어, “청사포 청사포” 연하여 부르고 또 부른다. 둘 다 낭만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앞의 노래가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의 정서가 깊다면, 뒤의 시구는 혼자 줄다리기하며 마음 쓰는 사랑의 또 다른 면을 잘 보여준다.
청사포는 물이 왔다가 나가는 곳이고, 그 물길 따라 배도 들고 난다. 당연히 그 배에 든 사람도 들고 나고 할 텐데, 그 이별을 잘도 노래한 게 정지상의 ‘송인’이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요, 최백호의 ‘청사포’다. 하지만 시인의 청사포는 좀 다르다. 물결이 왔다 가는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밀려온다. 그것도 “천년”, “백년”의 긴 시간을 두고 마침내 당도한 사랑이다. 이 중한 시간에 “그대”는 자기 이야기만 하고 화자는 사랑을 말하지 못해 “쩔쩔” 매는 심정이라니, 이때 들고 나는 건 물결이 아니라 마음이다. 이 마음이 저 마음에 가 닿기는 할까, 저 마음이 이 마음을 알아주기는 할까 하는 근질근질하고 아슬아슬한 한때다.
포구 이야기만 하는 그대도 실제로는, 사랑 앞에 “쩔쩔”매는 마음이긴 매한가지일 수도 있겠다. 청사포 청사포, 소리 내어 읽으면 푸른 바람 한 가닥이 몸을 지나간다. 최백호의 노래를 틀어놓는데 오래된 컴퓨터가 소리와 영상을 자주 끊어 놓는다. 오래된 사랑도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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