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로 누워 있다가 / 박우현
몸살이라는 단어는 있는데
마음살이라는 단어는 왜 없는 것일까
음양의 이치로 보나
조어법으로 보면 의당 있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하다
하여 이렇게 쓰고 싶어졌다
삶이 변비 걸릴 때 마음살 나겠지
스트레스가 이명처럼 떠나지 않을 때 마음살 나겠지
젊은 백수들 비라도 내리면 마음살 나겠지
생이별하고 사랑이 조각나면 마음살 나겠지
그리워도 전화조차 하지 못하면 마음살 나겠지
시 한편이라도 잘 써 보고 싶은데 죽어라 쓰여지지 않으면
마음살 나겠지
이렇게 마음살 나면 마음져누우리라.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작은숲출판사, 2014.
* 몸살은 몸과 살(煞)의 합성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어원이 불명확한 단일어로 보고 있다. 아프면 만사 귀찮아지고 밖으로 나서지 않고 몸을 아끼게 되니 ‘몸을 사리다’에서 몸살이 나왔을 법도 하고, 그렇게 해서 나쁜 기운을 나가게 하고 몸을 회복하게 하는 자정 기능을 하니 ‘몸을 살리다’에서 말이 빚어졌을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몸에 살(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이 끼는 상태 자체가 몸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시인은 몸살로 누워 있다가, 몸살에 배우며 시 한 편 건지는 덤도 누린다. ‘몸살이란 단어는 있는데 왜 마음살이란 단어는 없는 것일까?’ 생각하는 순간, 배움이 시작되고 배운 것을 복기하니 이렇듯 참한 시가 된 것이다.
위 시에서 마음살이 생기는 여러 경우에 몸살을 대입시켜도 거의 말이 되는 걸 보면 결국, 몸살이란 것도 마음이 안 좋아 생긴 영향이 크다고 봐야겠다. 애정 문제든 생계 문제든 자아실현의 정도 문제든 바람직한 상황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에 마음 다칠 일이 많기도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다르지 않으니, 몸이 부대끼어 몸져눕듯이 마음이 힘들 때 “마음져누우리라”는 표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몸살이든 마음살이든 살(煞)은 살살 달래서 독을 빼는 게 좋겠지만, 시인을 앓게 하는 ‘시’란 녀석은 그 독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또한, 몸살이 와서 마음을 생각해 보기도 할 것이고, 마음살이 깊어 다른 마음도 헤아리게 될 것이니 사는 데 몸살을 지극히 대접할 이유가 분명 있다고 하겠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개 / 고정희 (0) | 2017.04.27 |
---|---|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0) | 2017.04.25 |
왕버들이 빨아들이는 나 / 손남숙 (0) | 2017.04.15 |
시 쓰기 / 백미혜 (0) | 2017.04.09 |
옆으로 보기 / 오수일 (0) | 2017.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