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날개 / 고정희

톰소여와허크 2017. 4. 27. 16:41

날개 / 고정희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나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성신 술잔 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선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 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 『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1991.(1996년 ‘푸른숲’에서 재출간)



   * ‘날개’ 하면, 미쓰코시백화점(현재, 명동 신세계백화점 전신) 옥상에 올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이상, 『날개』) 외치던 사내가 생각난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소통마저 막힌, 박제가 되어가는 사내의 절박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반면, 위 시의 ‘날개’는 어떤 필요에 따라 스스로 희망하는 게 아니라 생일을 맞이한 ‘그’에게 달아주고 싶다는 거다. 선물로 마련한 분청사기에 “내 목숨의 꽃”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귀한 ‘그’에게 동시에 “개마고원 바람소리”,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만주대륙 하늘”까지 보내고 싶다는 것에서 ‘그’와 ‘나’의 지향도 슬쩍 읽어낼 수 있다. 분단 조국 이편의 현실에 고착되지 않고 경계를 넘어가는 자유로의 정신의 소유자이거나 어딘들 갈 수 있는 모험 인자가 유난한 동료일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그’를 사랑하고 챙기고 싶은 마음에 분청사기와 ‘없는 날개’까지 상상하며 보내지만, ‘그’가 ‘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고 스스로 혹은 함께 날갯짓을 할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기대와 불안이 섞여 있다. 여하튼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날개를 주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선물일 것이다.

   분청사기 문양에서 이 시가 촉발되었겠지만 날개를 생각하는 것은 시인의 개성이다. 시인은 날개를 미처 못 펴고 요절했지만 남은 시들이 힘차게 비상하고 있으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날개 단 미사일’ 대신에 시인의 꿈대로 ‘날개 단 분청사기’로 북쪽 여행을 다녀오면 오죽 좋을까 싶다. (이동훈)



분청사기 철화 모란 무늬 장군 (국립중앙박물관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