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의 송하관폭도 / 이동훈
영영 방심(放心) 상태가 되어 버릴 수는 없나?*
왜, 이 구절에서 그림 하나 살처럼 꽂혔을까.
아니, 그림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문장을 만난 거다.
보라! 이인상의 송하관폭도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내리치는 물줄기의 파문을.
그 파문이 수직의 부챗살 따라 마구 번져나가는 것을.
저쪽 언덕을 향해 납작 엎드린 소나무는
계곡을 건너게 하는 다리 같기도 하고
이쪽을 막 뜨려는 이무기 같기도 하다.
아슬아슬한 긴장과 넘치는 박력으로
그림을 보는 순간부터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언덕 이편 너럭바위에 앉아 먼 데를 보는 사내는
이인상 자신이었을까.
명문가 집안이라지만 조부에게 서자 꼬리표가 붙으니
일찍 여읜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서자가 되어 실의의 날을 견디며 깊어지고 있었겠다.
평생의 굴레를 벗지 못하여 입은 다물어도
붓은 가만있지 않았다.
아픈 이를 위해 부채 그림을 선물하고
집 없는 사람을 위해 누각을 그려 보이기도 하면서
인간의 도리를 다할 뿐
사대부면 어떻고 미관말직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출신과 가계와 사회 공기로부터 풀려나 방심 상태가 되려는 마음이
그림에 들어 있는 줄 이제 알겠는 거다.
저 음전한 사내
몸을 날려 소나무에 걸터탈 것 같으면
바위를 무너뜨리며 저쪽 하늘로 날아갈 것도 같은데
사내의 침묵은 폭포보다 깊다.
* 이상, 「권태」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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