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을 만나다 / 이동훈
공원 벤치에서 사내를 만났다.
출가의 사내는 출세에 대한 미련인 양
베개 대신 두툼한 사전을 머리맡에 두고 있다.
소주와 육포를 내놓았더니
몇 개 남지 않은 이빨마저 흔들린다며
소주만 몇 번 홀짝인다.
식구(食口)를 나누어 헤어지자는 아내 말을
궁싯대며 떠나왔다는 사내를,
가난과 불운을 말하며
복불복 운수에 매였다는 사내를,
차마 웃지 못하여
이빨 사이 찡긴 포 조각처럼 불편해졌다.
구구한 사정을 짚다 보면
밥이니 복(福)이니 하는 것이
생계의 최소한이라고
한 입 거리 수단(一 口 田)일 뿐이라고
사전 어느 페이지에도 걸리지 않을 글귀로 와 닿는데
암커나 씁쓸한 일은
작은 입 하나 건사 못하고
밥 때문에 사랑을 뉘우치는 것이다.
이제 밥도 복도 다 귀찮다는 듯
사내는 신문지 몇 장으로 간단하게 구겨진다.
사내를 두고 온 저녁에
어금니가 욱신욱신 아파온다.
먹는 복도 지지리 없는
출출한 그와 나를 위하여
고기 씹고 세상 씹는 이빨 힘이라도 성하기를.
* 『삼국유사』에 나오는 인물로 꿈속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으나 생활고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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