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사나이 / 장정일
이해할 수 없다. 라고 그녀는 쓴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자신의 필체를 바라보며
그녀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남편은 몇 겹의 문을 걸어잠그는 것인가
그녀는 남편이 느끼는 삶의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라고 그녀는 쓴다
두 명의 남자와 싸워온 칠 년간 그 칠 년간
두 명의 남자와 한 지붕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
남편이 걸어잠근 방문 주위를 서성여야 했던
그녀의 난처한 결혼 생활. 아무래도 그녀는
남편의 칠 년간을 이해할 수 없다
험프리 보가트에게 빠진 사나이. 라고
그녀는 쓴다. 그리고 계속해서 쓴다
동글동글한 필체로 그녀는 쓴다. 남편은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다. 라고 저녁을 마친 남편은
영사기가 설치된 취미실로 간다. 라고
그녀는 쓴다
남편은 어린 딸의 재롱에 흥미가 없다. 라고
그녀는 쓴다. 매일 저녁, 이것 봐요
당신 아이 노는 모습 좀 봐요. 할 때
남편은 얼마나 심드렁한가. 난
영사기나 손보겠어. 이것 봐요, 할 때마다
난 영사기나 손보겠어
남편은 험프리 보가트에게 미쳤다. 라고
그녀는 쓴다. 그러나 곧 그것을 지우고
험프리 보가트에겐 남편을 매료케 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라고 고쳐 쓴다. 그리고 이 문장이
완곡하게 표현된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미쳤다. 라고 쓸 용기가 서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재미로 같은 영화를 칠 년간이나 본담?
어려운 삶! 이라고 그녀는 쓴다. 그녀는
한참 생각한 다음 <어려운 삶!>이란 문구를
북북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쓴다.
<이해 못할 삶!>이라고 그녀는 쓴다.
매일 저녁 호기심에 가득 찬 남편이
아직, 누구에게도, 험프리 보가트는, 이해되지 않았다,
고 중얼거리듯이 그녀는 자꾸 쓴다.
이해 못할 삶! 이라고
-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 험프리 보가트와 ‘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사나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 ‘카사블랑카’(1942)나 ‘고독한 영혼’(1950)을 찾아보아야할 성싶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몇 글자 끼적거려 두기로 한다.
우선, “두 명의 남자와 한 지붕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에 위로를 보낸다. 한 명의 남자를 집에서 내치거나 자신도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여자를 들여서 우정을 자랑했다면 서로 공평했을 것이다. 물론, 문 걸어 잠그고 들어간 밀폐 공간에서 수년 간 쳐다본 얼굴이나 영상이 마냥 좋아서 식구도 잊고 지낸다는 게 여간한 일은 아니지 싶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수용이 안 되니 “미쳤다”라고 쓸 만한데, 동글동글한 필체의 그녀는 “어려운 삶!”으로 둘러말한다. 사람에 홀리거나 일에 미쳐서 다른 방편을 얻지 못하는 남편의 삶이 어렵고 또 그걸 지켜보며 방치된 그녀의 삶도 어려워 보인다. 이 어려움은 어렵지만 헤아려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어려운 삶!”을 “이해 못할 삶!”으로 고쳐 이해한다. 하지만 이 시를 두고 남녀 관계의 문제로 국한한다면 이해의 폭을 퍽 좁힌 게 된다.
사실, “아직, 누구에게도, 험프리 보가트는,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사나이조차 험프리 보가트를 읽어 내지 못한 셈이다. 여기서 험프리 보가트를 ‘빠져서 헤매고 싶은 대상’으로 추상할 수 있다면 이 유혹의 세이렌은 저만큼 떨어져서 자신의 신자가 자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어떤 수단으로든 자신의 정체를 다 드러내는 일도 없겠다.
젊은 날의 시인에게 험프리 보가트는 뭐였을까. 어쩌면, 골방에 틀어박혀 건져 올린 시 한 편이었을지도! 재미와 고통에 취해 일상을 잊게 하는 소설 한 줄이었을지도! 만약 그런 경우라면 이 치명적이고 배타적인 유혹을 견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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