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징검다리 / 신형식

톰소여와허크 2017. 10. 22. 21:55




징검다리 / 신형식



자리를 내주며 서 있는 것이다

한 걸음씩 돌덩이로 마침표를 찍으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너를 듣기 위해

귀를 박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계절로 올 너를 위해

이렇게 가슴 벌리고 있는 것이다


- 시화집『옷걸이에 걸린 남자』, 미래문화사, 2017.


* 징검다리는 강이나 냇물 중간중간에 돌을 놓아 이편에서 저편까지 건너게 해주는 다리다. 이때 중간에 놓인 돌들을 징검돌이라 한다. 이태준의 『돌다리』(1943년)에는 커다란 자연석 징검돌이 물에 얼마간 쓸려 내려간 것을 동네 사람 수십 명이 동아줄로 엮어 원래대로 세우려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돌다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추억이 배여 있어서다. 정작, 소설은 땅을 둘러싼 부자간 갈등이 주요 내용이긴 하다.

시인은 물에 박힌 징검돌에서 “너를 듣기 위해/ 귀를 박고 있는” 모습을 잘도 포착했다. 시인의 징검다리 역시, “너”와 관련된 지난 추억과 무관하지 않은 모습이다. “너”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가까운 피붙이일 수도 있다. 이 시대를 같이 사는 수많은 “너”로 확대해도 상관없겠다.

그런 “너”는 지난 계절, 징검다리를 건너서 저편으로 떠났다. 그리고 시인은 “너”를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들으려고 한다. 사랑을 간직하며 너에게 골똘히 기운 모습으로 보아도 그만이지만 물에 귀를 박는 각오를 생각할 것 같으면 갈등 끝에 “너”를 보내고 “너”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모습으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징검돌은 편평하게 자리 잡는 게 보통인데 시인은 이를 “가슴 벌리고” 너를 포용하는 모습으로 본다. 부자간에도 얼굴 붉히는 일이 적다고 할 수 없고, 연애에도 다툼이 없으면 거짓말이고, 남과의 관계에서는 말 펀치가 오고 가기도 한다. 싸움 자체가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싸움 끝에 귀를 더 열고, 마음을 더 넓히는 자세를 징검돌에게 배우는 시간도 귀해 보인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성론 / 김일석  (0) 2017.10.29
나는 누구인가 / 한상권  (0) 2017.10.24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지 않는 집 / 정동재  (0) 2017.10.19
바오밥나무 / 박일환  (0) 2017.10.16
산에서 / 조태일  (0) 201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