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겨우살이 / 나석중

톰소여와허크 2017. 11. 30. 01:03





겨우살이 / 나석중



하늘에 빌붙어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당신의 봄 여름 갈 겨울 없는 통증의 사계절


목에 구멍을 뚫어 밥 먹지 않아도

하루에도 몇 차례 고비사막을 넘는 당신


하늘에 별을 쏘아 올리는 머리로도

풀 듯 풀 듯 못 푸는 지상의 숙제라니!


확 달려드는 이 생강나무 꽃을 어찌할까요

당신이 아프니 나의 봄도 아픕니다


- 『외로움에게 미안하다』, 북인, 2017.



 

* 나석중 시인이 수석(壽石)과 야생화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는 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밖의 삶의 이력이나 근황이 궁금하긴 해도 특별한 인연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만 떼 놓고 보면, 가까이 지내는 당신이 몹시 아팠거나 아프거나 하는 상황이 있는 줄 짐작할 뿐이다.

겨우살이는 겨울 나는 이런저런 채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겨우살잇과의 식물 이름이기도 하다. 주로 참나무에 기생하며 겨울을 나는데 이른 봄에 열매를 맺어 새들의 식량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항암 치료 효과가 있다 해서 사람들이 어지간히 거둬가면서 새들의 불만을 산다는 소문이 있다.

통증의 사계절을 지나는 당신은 겨우살이를 닮았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당신의 계절은 한데서 지내는 혹독한 겨울이다. “겨우겨우 살아내는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며 삶에 대한 물음과 회의도 깊어진다. 당신과 나, 이 세상에 왜 왔을까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인연이 시작된 것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인지에 대해서 두루 생각하다 보면 숙제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시인은 확 달려드는 이 생강나무 꽃이란 말로 감각적으로 줄여 놓는다. 겨우살이 꽃으로 시작해서 생강나무 꽃으로 끝나는 게 잠시 의아했지만 생강나무 아래 생각 좀 하라는 농담이 이때 제격이다.

생강은 통증에 좋다. 그 생강에서 생강나무가 연상되었을 법도 하다. 또한, 겨우살이 꽃과 생강나무 꽃은 노랗게 머릴 내민다. 노랑은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그 이미지가 우울하기도 하고 거꾸로, 명랑하고 밝기도 하다. 당신이 아픈 것은 더없이 우울한 일이지만, 그런 당신을 위해 나의 봄도 아픕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서 세상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워진다.

겨울 초입, 마음은 벌써 겨우살이에 노란 전구 켜지는 날을 기다린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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