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궤짝 / 정원도
염치도 없이 부려먹어
부쩍 노쇠기가 든 말이 마침내
큰고개 넘다가 거꾸러지고야 말아
아양교 건너 고비 길에 들어서자마자
시꺼먼 왕눈깔 껌벅거리며 푸드덕 푸덕
꺾인 무릎 버둥대는 통에
달려온 마부들끼리 떠받치다시피 오른 고개
북새통에 앞서 세워 둔 마차에
덮개를 찢고 감쪽같이
능금 궤짝을 빼돌린 들치기 소동에 아버지는
그들이 사라진 언덕배기로 욕바가지를 퍼부었다
그런 날은 아무도 타령조를 흥얼거리지 않았고
도난당한 능금 값 변상을 위해
막걸리 한 잔도 없이 빈속으로 돌아오는 길
쓸데없는 채찍질만 허공에 휘둘렀다
냅다 그 날로 말을 갈아 치워
한참이나 웃돈을 얹고서야 새 말을 끌고 오던 밤은
마구간 옆 빈 마차에 거나한 취기로 걸터앉아
오동추야 달이~* 밝기만 했다
-『마부』, 실천문학사, 2017.
* 오동동 타령의 노랫말.
- 대구 아양초등학교에서 파티마병원에 이르는 길은 지게꾼도 마부도 한 번에 못 넘고 쉬어 넘어가는 가파른 고개다. 지금은 잦은 길 닦기와 터 고르기로 밋밋해진 감이 있지만, 큰고개오거리, 큰고개역 등의 지명에 이름을 남기며 이 지역의 대표성을 잃지 않고 있다.
시인의 아버지는 마부다. 서정춘 시인이 마부 아버지를 두고, “나도 커서 마부가 되겠노라”(‘동화’에서) 며 부자간의 간격을 지운 바 있지만, 정원도 시인 역시, 마부 아버지와 마부 아들인 자신의 삶을 연작으로 이어 쓰면서 부자간의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탈출하거나 아버지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완성해가는 모습과는 구별된다. 정원도 시인의 경우엔 동화적 요소와 함께 가난한 운명이 구체성을 띠며 드러난다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데, 아마도 서정춘 시인보다 더 길게 써서 그랬을 것도 같다.
인용한 시에도 가계의 가난과 고달픔이 짙게 배여 있다. 수레를 끌던 늙은 말이 큰고개 마루를 앞두고 무릎이 꺾인다. 나이 든 데다 너무 부려먹은 탓이다. 여기까진 예고된 일이기도 하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궤짝도 도둑맞는다. 너나없이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마부 아버지는 그날만큼은 좋아하던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동고동락했던 말의 최후와 노동의 대가를 가로챈 간 몹쓸 인심에 화풀이 술이라도 할 만했지만 최소한의 생계에 대한 책임이 이를 눌렀을 것이다. 막걸리 한 잔에 흥을 내는 날에도 근심 반, 걱정 반이다. 이땐 아버지 인생도 고개의 막바지에 닿아서 숨이 짧아지니 새어머니가 대리 마부로 나서는 이야기가 다른 시편에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제목을 보다가 문득, ‘사라진 궤짝’의 향방이 궁금해진다. 며칠 굶은 노모의 입에 능금 한 알, 마부 아들을 닮은 어린 자식의 입에 능금 한 알, 그 단내로 몹쓸 인사가 한 시절의 허기를 아슬아슬 지내온 거라면 마부의 쓰린 속도 조금은 풀리려나.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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