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커피를 타다가 / 구광렬

톰소여와허크 2017. 12. 29. 15:08




커피를 타다가

- 먼 산 배주열 선생님께 / 구광렬



오늘 아침처럼 신이 필요한 적은 없다 소복한 설탕을 얼마나 깎아내려야 커피 맛이 좋으려나, 떨어져나간 새끼발톱만큼의 설탕을 티스푼에서 덜어내는 데도 신이 필요하다

최선의 맛을 내기 위해선 내 커피 취향을 아는 신이 있어야 하고 그 신은 또 우주의 수많은 별 중 지구, 한반도, 남한, 울산, 남구, 무거동, 산29번지, 20호관, 314호에 있는 두 개의 책상 중, 앞 책상에 앉아 있는 세수도 안 한 나를 사랑해야 하고 전지전능은커녕 멀티태스킹도 안 되는 신이라면 같은 시간, 21호관 주차장에서 밤샘 작업을 한 뒤 고물차 시동을 못 걸어 쩔쩔매는 315호 곽 선생을 나보다 불쌍타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설탕 가득한 티스푼을 든 내 손은 완고하다 신도 커피를 마신다면 커피를 타던 손을 오늘 아침 나처럼 허공에다 멈추곤 할까 그 손은 또 무엇이 내려줄까

아픔이다, 내 손을 내려주는 건, 중력의 통점(痛點)이 내리는 지구별에서의 존재적 아픔


- 『슬프다 할 뻔했다』,문학과지성사, 2013.


* 다큐멘터리 영화, ‘체 게바라 뉴맨(트리스탄 바우어 감독)’을 보고 구광렬 시인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구광렬 시인의 종교는 체 게바라다. 제국주의로 노골화되는 자본의 독점에 저항하고, 특권을 내려놓고 평등을 지향하는 정신을 높이 산 것일 테다. 혁명의 상징인 된 체 게바라도 콩고와 볼리비아의 게릴라전에서 연거푸 실패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위 시의 표현을 빌리면 존재론적 “아픔”으로 귀결되지만 동시에, 정신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체 게바라의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의미도 있겠다.

이 시를 읽으며 믹서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신다. 봉지에 설탕 조절 부분이 있지만 따로 조절하지도 않을뿐더러 별다른 고민이 있을 리 없다. 시적 영감은 그 고민이 오는 데서 생긴다는 걸 시인이 알려준다. 티스푼으로 설탕을 뜨는 짧은 사이, 시인은 설탕 양에 대한 고민이 있다. 자신의 의지로 설탕을 조절하지만 이상적인 커피 맛에 조금씩 못 미친다. 그 맛은 신의 영역이다. 그 신이 시인보다 상황이 절실해 보이는 “315호 곽 선생”에게 가지 않고 지금 커피 맛을 위해 오기를 바란다. 여기서 신을 찾는 사람의 허구나 모순을 생각해 볼 순 있겠으나 시인의 의도는 마지막 행에 집중되어 있다.

누구든 올려 든 것을 내려야 한단다. 세상에 나온 그날부터 울고 떼쓰고 배우고 실천하면서 자신이 가진,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것을 바닥으로 혹은 삶 저편으로 내려놓아야 하니 아프다. 통점이다. 지구별에서 신을 믿고 안 믿고는 선택일 수 있지만 존재를 바닥으로 죽음으로 끄는 중력에 무릎 꿇게 되는 건 피해갈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에 얼마나 높이 멀리 뜨고자 했는지, 또 얼마큼 폼 나게 저항했는지가 그 사람의 현존을 말해줄 것이다.

체 게바라 영화가 끝나고, 체 게바라 챙겨 봐라!, 체 게바라 책에 봐라! 누군가의 농담이 진담으로 들린 날, 커피는 식었지만 따뜻한 느낌이 남아 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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