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모든 게 잘 되어간다 / 이승훈

톰소여와허크 2018. 2. 11. 11:41





모든 게 잘 되어간다 / 이승훈


제자들과 함께 들린 인사동 어느 술집 그 집에도 멸치가 없었다 동우, 동옥, 경선, 지선 등등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멸치가 없군! 내가 말하자 동옥아 네가 사와! 동우가 시키자 동옥이가 말없이 일어나 나갔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이상하군 동옥이가 강릉으로 간거 아니야? 아니 멸치 사러 순천으로 갔나? 내가 말했지 순천은 그의 고향이다 한참이나 지나 동옥이가 들어온다 동옥아 너 강릉까지 갔다 온 거야? 누군가 물었지만 그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멸치를 한 주먹 꺼내놓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선생님 멸치 파는 가게가 없어 한참 헤매다 어느 술집에 들렀어요 그 집엔 멸치가 있다는 거야요 그래서 맥주 한 병과 멸치를 달라고 했죠 맥주만 마시고 돌아올 때 멸치를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모두들 하하하 즐겁게 웃던 밤


- 『이것은 시가 아니다』,세계사,2007.


*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가 애매하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란 시에서도 1980년대 초 시인 자신이 겪은 황당한 경험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김일성의 전화를 받았다든지 하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옛 제자의 말과 행동에 가슴 아파하는 내용의 산문시다.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에겐 그 시대와 무슨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시인은 대체로 이야기만 던져두는 식이다. 위의 시도 마찬가지다. 술집에서 있었던 경험담이다. 시집에 들었으니 시라고 여기지만, 산문집에 들었으면 산문으로 읽고 지났을 것이다.

물론, 시인의 산문시는 형태에 대한 오래 고민과 단련 끝에 나왔다. 「나를 쳐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시를 보면, “등단 시절엔 연 구분 있는 시를 쓰고 싫증이 나 그 후 산문 형태를 시도하고 산문 형태도 지겨워 이른바 단련 형태를 시도했지 물론 이 형태도 지겨워 단련 형태이면서 시행이 가늘고 긴 형태도 시도하고 이런 형태도 다시 지겹고 그래서 이번엔 변형된 산문 형태를 시도하고”나중에는 “산문 속에 정사각형을 넣어도 보고 토막 글을 넣어도 보고 그러면서 40년이 간 거야" 그러니 “그동안 난 시를 쓴 게 아니라 형태를 찾아 헤맸지”라고 말한다. 이렇게만 보면, 시인은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고 익숙한 것을 부정하며 새로운 것을 시험해보는 정신의 소유자다.

하지만 시인의 시편에서 보이는 일상의 모습은 전혀 다른 데가 있어 재미있는 대비가 된다. 시인은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잡채밥」중). “지치지도 않으십니까”라고 배달 청년이 독자를 대신해서 묻는데 얼핏, 배달 청년도 어지간히 지쳤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기벽이라 할 만한 또 하나의 습관은 “안주로 멸치만 먹는”(「멸치」중)다는 것이다. 단골 맥줏집 사장이나 제자들이 알아서 멸치를 챙겨주는 데 이르렀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적잖이 질문도 받았을 거 같은데 시인의 대답은 “다른 건 잘 안 맞아서” 정도인 모양이다.

사실이 이러하니, 선생과 제자가 오붓하게 모인 술자리에 멸치가 없으면 곤란했을 것이고, 제자 한 명이 자원해서 멸치 구하러 다니는 풍경도 종종 있었겠다. 어느 날은 “동옥”이가 나섰는데 멸치 구하러 바다까지 갔는지 좀처럼 귀환하지 않는다. 한참 늦게 온 동옥이 “그 집엔 멸치가 있다는 거야요”로 시작되는 모험담을 풀어놓았을 때는 그 상황이 퍽이나 순진하여 한 편의 만화와도 같다. 멸치 시인과 그 시인을 따르는 제자들의 해프닝이 흐뭇한,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그 안에 서로 간의 정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걱정했던 일에서 걱정을 덜게 되고, 모두들 웃기도 하면서 시도 술술 풀리니 이만하면 “모든 게 잘 되어간다”고 할 만하지 않나.

이처럼 산문 형태로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시를 두고, ‘시가 더 특별한 무엇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의식했는지 시인은 서문에 이렇게 써두었다.

“시 따로 인생 따로 노는 이 시대 시인들의 위선과 오만을 미적으로 비판하고 근대 부르주아 예술이 강조한 이른바 자율성 미학을 파괴하고 일상과 예술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시인의 말에 공감하며,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에서 시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표출되는 것처럼, 일상과 예술의 경계 그 접점에서 줄다리기하는 게 예술하는 사람의 운명인 듯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