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를 듣는 밤 / 박몽구
안드라스 쉬프의 피아노 연주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듣는다
깊게 피가 밴 기침을 쿨룩거리면서
피아노가 없어서 무릎 위에 기타를 얹은 채
악보에 음표를 그려나간 가난한 음악가를 생각하면
비좁은 서재 곳곳에 번진 푸른곰팡이가
따스하게 입술을 부벼온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깡통이 된 통장, 바닥을 보인 양식은
두터운 영혼의 빵으로 채우면 된다고
안드라스 쉬프의 건반을 따라
맑은 숭어 뛰노는 선율이 어깨를 감싼다
비록 강사료는 쥐꼬리지만
아이들의 헝클어진 가슴 속에
눈앞의 돌부리 성성한 변방 넘어
수평선 팽팽한 먼 바다를 보여주면 된다고
내게 가장 큰 적은
차갑게 등 돌린 친구나
생인손 파고드는 저릿한 상처가 아니라
나밖에 모르는 것이라고
안드라스와 함께 온 슈베르트가
램프빛 목소리로 귀띔해 준다
그날 밤은 새벽까지 목이 말라
연필에 침을 발라 시를 썼다
- 『칼국수 이어폰』,시와문화,2015.
* 시인은 빌리 할리데이의 재즈,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비롯하여 피아노곡에다 가곡까지 장르에 구애됨 없이 음악을 즐긴다. “청계천에서 주워 모은 부속들을 얼기설기 붙여 만든/ 낡은 진공관 앰프”(『브람스를 듣는 밤』중)에서 보듯 마니아의 체취가 느껴진다.
그런 중에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듣는 시간은 “가난한 음악가”, 그의 곡을 연주하는 파이니스트, “맑은 숭어 뛰노는 선율”, 그걸 듣고 있는 시인의 삶이 중첩되어 그야말로 하모니를 이룬다. 슈베르트가 베토벤과 통했듯이 가난한 음악가와 가난한 시인도 그러하다. “바닥을 보인 양식”으로 당장의 가난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양식(糧食)이 아니라 양식(良識) 있게 사는 것이다. “가장 큰 적은” 자기 명예와 자기 곳간에 들 것만 생각하느라 남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돌아볼 줄 모르는, “나밖에 모르는”, 나뿐인, 나쁜 사람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나뿐인 마음의 빗장을 여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결국, 양식이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시인은 당장의 고통이나 이익을 떠나 “수평선 팽팽한 먼 바다를” 보는 시선을 말한다. 바다를 향하는 숭어(슈베르트의 가곡 ‘숭어’는 배경 가사에 주목하여 민물에도 살 수 있는 ‘송어’로 정정되는 분위기다)의 힘찬 유영처럼 아이들도 먼 데 눈을 주고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란다.
슈베르트를 듣는 밤, 시인은 늦게까지 시를 쓴다. 세상을 고민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시를 쓰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양식을 쌓아가는 일일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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