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 이장희
고마워라
눈은 땅 위에 아낌없이 오도다
배꽃보다 희도다
너무나 아름다운 눈이길래
멀리 신성한 것을 이마에 느끼노라
아아 더러운 이 몸을 어이하랴
고요한 속에
뉘우침만이 타오르다 타오르다
-《新民》19호 1926년 11월 / (김재홍 편저), 『봄은 고양이로다』,문학세계사,1983.
(일부 표기를 현대어로 바꿈)
* 이장희 전집을 읽으며 반가운 일과 서운한 일이 교차한다. 반가운 일은 이장희와 친분이 있었던 오상순, 양주동, 백기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고, 서운한 일은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버린 이장희의 유고를 보관하지 못해 백여 편의 시를 날린 일이다.
이장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다는(만나지는 못했지만) 친구 오상순은 이장희의 죽음이 인생 패배자의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산 자는 살 권리와 자유가 있는 동시에 죽을 권리와 자유가 있는 것이다”라며 이장희를 편든다. 이장희의 유고를 이상화에게 맡겼다가 분실한 사건을 자세히 언급하며 가장 애달아한 이도 오상순이다.
현진건 집에서 백기만을 통해 이장희와 인사를 나누게 된 양주동은 “군은 그 수줍어하는 성질 때문에 또는 그 철저한 결벽 때문에 어디까지나 비사교적이었”으나 자신과는 공명이 잘되어 지우가 되었음을 말한다. 시 동인지 《금성》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다가 비보를 접했을 때, “시인 이장희 군의 예술은 결국 남을 대로 남을 것이요, 오직 아는 자라야 알 것이다”라는 인상적인 평을 남긴다.
대구보통학교 2년 선배이기도 한 백기만은 “고월(이장희)은 대구 부호 이병학 씨의 전실 소생 아들이다. 고월은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고 소개한다. “고월이 경제적으로 막대한 곤란을 겪은 것은 물론 가정환경이 이유인 것이지만 그 부친과 사상적 대립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였다고도 했다. 또한 이장희 시인이 자신 말고는 주변인을 속물로 지칭하는 결벽증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굴원이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아서”(<어부사>중) 추방당했다고 하더니, 이장희 시인이 그 유별난(?) 맑음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위 시에서 맑음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배꽃보다 흰 “눈”이 대신 영예를 안았다. 맑고 아름다운 흰 눈이나 그만큼의 고귀한 존재에 비하면 자신은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더러운 몸이 되었다고 탄식한다. 부끄러움과 뉘우침이 자못 깊어서 그 열기로 거듭 타오르고 있다고 표현했으니, 자신을 완전 연소시킬 정도로 시인의 자책과 자기부정이 지나침 감이 있다.
굴원 이야기에 나오는 어부는 세상이 탁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찌할 도리를 찾아야지 않겠냐는 충고를 한 바 있다. 이 어부의 말이 굴원 같고, 이장희 같은 사람에게 쉽게 파고들 리 없다. 맑고 깨끗한 것에 대한 지향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절망하여 투신한 굴원이나, 자신이 더러움에 물들었다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장희는 동류로 보인다. 이들의 극단적 선택마저 옹호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부정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어 낭패를 당하는 이즈음의 일들이 결벽에 가까운 이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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