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 김종삼

톰소여와허크 2018. 5. 28. 08:16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 김종삼


그 해엔 눈이 많이 나리었다. 나이 어린
소년은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다.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어디메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나려 쌓이었다.
바람이 일면 심심하여지면 먼 고장만을
생각하게 되었던 눈 더미 눈 더미 앞으로
한 사람이 그림처럼 앞질러 갔다.

ㅡ시선집 『북 치는 소년』, 시인생각, 2013.


* 눈이 많이 내리던 해, 밖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초가에 몇 날 며칠 심심하게 있던 소년은 자신이 듣거나 책으로 읽은 “먼 고장”을 그리워한다. 스와니강이 떠오른 건 스티븐 포스터의 노랫말 때문이다. 포스터가 스와니강에 가 보지도 않고 곡을 만들었듯이 시인 역시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꿈꾸는 모습이다. “스와니 강가엔 바람이 불고 있었다 / 스티븐 포스터의 허리춤에는 먹다 남은 / 술병이 매달리어 있었다”(「스와니강」중)라고 쓰기도 했으니 음악을 사랑하고 알코올중독을 피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운명이 닮은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요단강은 레바논에서 발원하여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를 흐른다. 천국으로 넘어가는 길의 비유로 많이 쓰이지만 분쟁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시인이 스와니강과 함께 요단강을 그리는 이유를 선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이 ‘시인 학교’를 세우고 싶어 하는 영순위 장소가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시인 학교」 중)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시인의 고향이 남북한 접경지대에서 머잖은 황해도 은율인 것에도 생각이 미친다. 가장 가까운 고향 마을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되었다.

스와니강이든 요단강이든 고향 마을이든 그리운 것은 먼 곳에 있고 먼 곳은 그리움을 키우지만, 먼 곳은 여전히 멀고 소년은 조금씩 늙는다. 눈 더미 앞으로 아니면 감은 눈꺼풀 속으로 순식간에 지나간 “한 사람”은 시인의 분신인 ‘꿈꾸는 자아’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내용 없는 아름다움”(「북 치는 소년」중)을 연상케하는 면이 있고 막연한 꿈이 삶의 허무로 귀결되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마다의 “먼 고장”을 간직한 사람들로 인해 김종삼의 시는 좀처럼 늙지 않고, “내용 없는”에 잠시 앉았다가 “아름다움”에 오래 머물게 한다.

시인 학교는 레바논 대신 인사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그도 닫은 지 오래고 허리춤에 술병 매단 사람들은 먼 고장에 갔는지 그림자조차 귀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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