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 이민숙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야
우리 한번 그려볼까?
우리 조상님들은 세계적인 불상을
이렇게 만드셨대
예은이랑 혜영이랑 열심히 그린다
갑자기 우하핫
선생님 돼지 같아요
선생님 웃겨요
뭄뚱이랑 얼굴이랑 너무 뚱뚱해요
그래? 이게 국보 78호 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야?
아니요!
돼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요
꼭 돼지처럼 생겼잖아요
아니요! 예은이랑 딱 닮았아요
맞아요! 혜영이하고 똑같아요
이 시대 유쾌한 미륵보살들이랑
하하 호호 한 세월 보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저 미소!
-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애지,2015.
*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틀고 뭔가 골똘히 사유하는 모습인데 미륵이 중생 구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번갈아 전시되면서 이목을 모으고 있다. 둘은 전체적으로 미끈한 느낌에 잘 생긴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국보 1호인 광륭사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도 가세해 인기를 다투고 있다. 이들 불상이 하나같이 중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평양에서 발굴된 국보 제118호(리움미술관 소장) 반가사유상은 단단하게 여윈 몸매에 각진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어 대비가 된다.
이 중에 시인이 학생들에게 그림 소재로 내준 건 국보 제78호다. 원본을 보고 그려도 원본과 전혀 다른 게 아이들 솜씨다. 허리가 잘록한 반가사유상과 다르게 인심을 내서 몸피를 불린 넉넉한 반가사유상이 탄생되었다. 이름하여 “돼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될 리 없는 작품이지만 아이들은 유쾌하게 웃고, 시인은 이 웃음을 보물로 받아들인다. 돼지 운운에 괜히 서운해하거나 걱정하거나 하는 것은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어른들의 시선이다. 가벼운 것을 가벼운 대로, 웃음을 웃음으로 넘기지 못해 속상해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이 정말 무거운 일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 부처의 모습도 한결같지는 않다. 올해(2018) 영월 흥녕 선원지에서 발굴된 반가사유상도 정다운 이웃의 얼굴을 닮았다. 운주사 석불들도 생각난다. 넙데데하고 길쭉하고 찐빵 같은 부처 속에 잘 찾아보면, 돼지 상도 있을 것이다. 잘 생기고 잘 빠진 것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라 하지만, 못 생기고 개구진 데서 더 많은 위안을 얻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보듬어서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할 동그라미 / 뾰족할 수 없어 기어이 동그랗다”(「동그라미」중)며 한사코 동그래지려는 시인도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갖고 있다. 똑같은 일에 누군 정색하고 누군 웃는다면, 웃는 쪽이 평화다. 아이들의 웃음에 깃든 평화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깨는 이유를 가부좌 틀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머리 눌러가며 생각해볼 일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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