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등반을 떠나는 그대에게 / 최상호
오늘 아침
우리 집 어항의 눈곱만한 열대어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그 높이를 뛰어넘어
사라졌다
아이들은 물이 너무 많아 그랬다고
안타까워하지만,
나는 안다
그놈도 제 나름의 히말라야를 찾아
떠났다는 것을
- 『마음 밭의 객토작업』, 시선, 2018.
* 2004년 계명대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던 산악인 중에 박무택, 장민 대원은 설맹(雪盲)과 탈진으로 쓰러지고, 구조 가능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 속에서도 백준호 대원 홀로 구조에 나섰다가 박무택 곁에서 죽는다. 백준호 대원은 이듬해 산악인 최초로 의사자로 인정받는다.
따스한 구들방에 누워 만화책이나 넘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악전고투를 스스로 사서 하는 일이 좀체 이해되기 어려울 성싶다. 그럼에도 주위 걱정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히말라야를 선택해서 가는 사람들이 있다. 편안한 길로 가서 양식을 구하고 휴식을 바라는 것도 욕망이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로 가서 모험과 도전을 양식으로 삼는 일도 욕망이다. 같은 욕망이라도 자신을 담금질하고 결핍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치열함은 후자 쪽이 분명 더하긴 할 것이다.
그럼, 시에서 소개한 어린 열대어의 죽음은 어떤 욕망으로 그렇게 된 것일까. 구피를 길러본 경험을 적용해서 이해하자면, 수돗물을 갈아 넣든지 해서 위기감을 느낀 구피 중에 그걸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녀석 한둘이 크게 점프해서 어항을 탈출한 걸로 보인다. 물론, 어항 밖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죽음이니 구피의 선택은 권할 만한 게 못 된다.
이런 해석이 상식에 가까울 순 있어도 진실은 아니다. 죽은 구피는 상식 안에서 그저 어리석은 물고기로 치부될 뿐이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상식과 진실의 틈은 시적 상상력이 살아나는 산소 같은 공간이기도 하겠다. 시인이 구피의 행동이 “제 나름의 히말라야”를 찾아가는 거라고 말하는 순간, 구피는 실패한 삶에서 자유를 향해 제 욕망을 힘껏 사른 존재로 바뀐다.
타인을 공격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욕망이 아니라면, 어떤 욕망이든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또한 교차하기도 할 것이다. 구석방에서 히말라야를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히말라야에서 구석방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 욕망을 저울질하는 게 어리석은 줄 알지만 그래도 더 귀한 욕망이 있다면 동료를 차마, 혼자 보내지 못했던 백준호 대원의 마음일 것도 같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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