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묻어둔 고백 / 이창윤

톰소여와허크 2018. 12. 5. 08:29






묻어둔 고백 / 이창윤


사람들은 그곳을 난곡(蘭谷)이라 불렀지만
내게는 난곡(亂谷)
갈 곳 없는 해거름 때면 산자락을 향해 거슬러 올라갔고
아침이면 버스 종점으로 구르듯 내려왔던 곳
드문 인적에도 맹렬하게 짖어대던 묶인 개
굳게 닫혀 있던 녹슨 철대문
진달래 지천으로 피던 봄이면 담을 넘었다가
늦가을 하얀 약봉지를 들고 돌아오던 Y
뒷집 술주정뱅이가 도끼로 찍어 허물어진 담벼락 아래
따먹지도 못할 억센 깻잎과 잡풀들이 자라고
폭우가 쏟아지면 비가 새던 기왓장
질척거리던 언덕길
한겨울이면 얼어붙던 머리맡 자리끼
마중물만 삼키던 마당의 펌프
청춘이 독약 같다고 낙서하던 스무 살
천장이 낮아 일어설 수 없었던 다락방의 새벽

ㅡ『놓치다가 돌아서다가』, 북인, 2018.


* 난곡으로 불리던 곳을 검색해보니, 서울 신림동 일대다. 어원이 불분명하지만 난이 많거나 난처럼 향기로운 동네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법하다. 사나운 짐승이 출몰해서 낭곡(狼谷)으로 불리던 것이 뒤에 순화된 거라는 말이 그럴듯한데 “맹렬하게 짖어대던” 개가 이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는 지명을 좋게 바꾸어도 삶에 향기가 묻어날 리 없다. 난쟁이 가족이 행복구 낙원동에서 지옥을 살았던 소설도 있지 않나.
당시의 스무 살 청춘에게 난향(蘭香)은 난쟁이의 달나라와 다를 게 없다. 현실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시인이 묘사하는 난곡은 무허가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를 연상케 한다. 버스 종점에서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외지고 척박한 동네에 추위에도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가난하고 고생스런 삶의 모습이 이전 세대에겐 특별할 것도 없는 생활 자체였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골목을 떠나는 게 꿈이자 출세였을 거다. Y도 그런 꿈을 갖고 나갔다가 “하얀 약봉지”만 벌어서 돌아오고 말았다.
더러, 도심 재개발로 그곳을 뜨는 꿈이 타의로 실현되기도 했겠지만 적은 보상금과 강제 이주로 가난한 삶을 떨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그때의 스무 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집 제목이기도 한 ‘놓치다가 돌아서다가’, 그 앞에 ‘반쯤’이란 말을 넣고, 반쯤 놓치고 반쯤 이루기도 한 삶이라고 퉁쳐도 될지 모르겠다.
가난을 자산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다락방 천장에 머리 부딪혀 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난곡(亂谷)이 아니라 난곡(蘭谷)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