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덜어내기 / 조경진

톰소여와허크 2018. 12. 17. 17:40





덜어내기 / 조경진

 

 

그동안 주워 모은 알량한 지식 보따리와

내가 길러낸 잡초 같은 생각들이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내가 부리던 것들이

오히려 나를 길들이고 조종하려 드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방 안의 책과 가구를 시작으로

내 안의 것들을 하나씩 들어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게 속한 모든 것들이

스스로 물러나 텅 비워질 테지만

 

좁은 방 틈 없이 메우던 책장 치우고

활개 펴고 눕는다.

묵은 오디오세트 들어내고

바람이 지휘하는 합창 온몸으로 듣는다

 

()가 된다는 것은

없는 것()이 작용하는 까닭이다라는

노자의 말씀을 얼핏 떠올리고

내 곁의 잡동사니들을 조금씩 떨어내고 보니

구름처럼 가볍다

 

 -『척하다가, 정은출판, 2018.

 

 

* 시인은 책장과 책, 오디오 세트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내가 부리던 것들이 / 오히려 나를 길들이고 조종하려든다는 핑계를 댔지만 내가 책을 샀다고 해서 내가 책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책의 저자와 책의 내용과 자신이 상호 교감하며 앎을 깊게 하고 영혼을 기름지게 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을 것이다. 오디오를 수집하고 손질하며 귀와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도 심취했을 텐데 이제, 그걸 놓아주기로 한 것이다.

책 중독자, 오디오 마니아의 세계에서 발을 빼는 상실감을 걱정해줄 만한 상황이기도 한데 시인은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이 여유는 노자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노자 도덕경 1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번역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략 옮기면,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없음(-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없음으로 해서 그릇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없음으로 해서 방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쓸모()가 있어서다>. 특히, 시인이 번역한 마지막 문장은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이다. 없음의 쓸모를 말하지만 있음의 이로움을 부정한 것은 아니기에 해석의 폭이 넓어졌다.

시인은 책장이 있는 자리를 비움으로써 그 자리만큼 공간을 누릴 자유가 생겼고, 오디오세트를 들어냈기에 인공의 음악 대신 자연의 음악을 들이며 바람이 지휘하는 합창 온몸으로 듣는기쁨을 누린다. 애써 가꾸는 것, 놓기 싫은 것, 더 가졌으면 하는 것으로 인해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또 한 편,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세상은 없음이 가져다주는 선물로 가득차기도 함을 배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