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중옥(橘中屋)* 서신
- 추사가 아내를 생각함 / 박후기
바람 타는 섬에는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뭍에는 없는 것들이 섬에 있어
나인 양 여기며
그나마 위안을 얻고 지냅니다
귤이 그중 하나입니다
속은 희며 푸른 문채를 가진
귤이 나와 같기로서니,
어느덧
뭍에서 가슴에 품고 지냈던
매화, 대나무, 연꽃, 국화가
시들해진 것을 느낍니다
세상에 절개는 흔한데
살림은 어둡기만 합니다
흔한 절개에 쫓겨 내려와
굴원**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있습니다
‘세상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그래서 쫓겨난 것이라오’***
육백 리 제주 그 어디에도
당신을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망극한 성은과 당신,
소중한 것은 여전히
먼 육지에 있습니다
사랑은 발견입니다
돌과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
문득문득
당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 추사가 유배당했던 제주 적소의 당호.
**중국,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전국시대 혼란기에 개혁을 추구했으나 모함과 배척으로 유배를 반복하다 돌을 안고 강물에 투신.
*** 굴원의 시 <어부사>에서 인용
- 『사랑의 발견』, 가쎄, 2017.
* 추사의 적거지인 제주 대정(大靜) 마을, 몸 하나 의탁하는 집을 두고 수성초당(壽星草堂)이라 부르기도 하고, 귤중옥이라고도 한다. 제주 귤은 고려 적부터 서울로 가는 진상품으로 쏙쏙 빼가다 보니 나무를 일부러 자르는 일도 많았다. 추사는 제주 사람들의 생업과 직결된 귤을 자신의 당호로 삼는다. 일찍 귤을 노래했던 굴원의 영향도 없지 않다. “속세에 홀로 깨어 우뚝 서서 가로질러 속세와 어울리지 않는구나”라는 구절은 어부사에서 한번 더 (蘇世獨立 橫而不流兮 - 굴원, <귤송(橘頌)> 중) 만나게 된다.
이전 사대부들에게 익숙한 매화, 대나무, 연꽃, 국화 대신 귤을 당호로 삼은 것에 대해서 추사는 “푸른 문채”와 지조와 덕을 취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시인은 귤나무가 갖는 절개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으로 살림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가정한다. 발견은 고인의 문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유적과 삶을 더듬으며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에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시인의 언명은 남들이 읽지 못한 추사를 읽고 표현한 것이다.
더 큰 발견은 따로 있다. 부재를 통해서 “문득문득” 생각나 결국,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지극한 생각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이 삶을 거듭 힘들게 하지만 그런 중에도 지나간 일과 남은 일들 사이에 ‘사랑은 발견’이란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추사의 시 <유배지에서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를 다시 읽어본다.
配所輓妻喪 (배소만처상)/ 김정희
那將月老訟冥司 (나장월로송명사) 부디 월하노인에게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다음 생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나 죽고 그대만이 천리 먼 곳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차심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쇠라의 점묘화 / 나희덕 (0) | 2019.02.21 |
---|---|
모두 한 식구 / 서정홍 (0) | 2019.02.13 |
약간의 참음에 대하여 / 조영옥 (0) | 2019.02.02 |
르네상스 안경점 / 조동범 (0) | 2019.01.25 |
퉁사리 영감 / 김보일 (0) | 2019.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