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모두 한 식구 / 서정홍

톰소여와허크 2019. 2. 13. 01:30

모두 한 식구 / 서정홍

 

우리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말이야

 

갑자기 가을비 내리면

여기저기 늘어놓은 곡식에

비닐을 덮어 주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야.

 

곡식이 비를 맞으면

맛도 떨어지고

다시 말리려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갑자기 가을비 내리면

마을 사람들은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아.

 

논이고 밭이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곡식들을 챙기지.

모두 한 식구가 되지.

 

- 나는 못난이, 도서출판 보리, 2013.

 

 

* 합천 황매산에 들어 농사짓고 사는 서정홍 시인의 시에 신가영 화가가 그림으로 거들은 동시집이다.

추수철에 길가나 공터에 곡식을 말리는 일은 시골 어디서든 흔한 풍경이고, 갑작스런 비에 곡식을 수습할 여유가 없을 땐 비닐을 덮는 일도 예사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곡식을 널어놓고 더러 외출 중인 집도 있고, 걸음이 더딘 노인에게 재빠른 대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인데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남의 곡식도 자기 곡식인 양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비설거지 해주는 이웃이 있어서다.

이처럼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는 농촌공동체의 인정이 지구 가족 모두에게 미친다면 다툼도 전쟁도 기아도 확 줄어들 것이다. 더 나아가 외양간의 누렁소도 식구로 받아들이고, “같은 식군데/ 여태 밥 한 끼 나누어 먹지 못하고/ 미안하다이 미안하다이./ 오늘은 니부터 먼저 먹거래이.” (정월 대보름)라고 할머니가 건넨 말은 어떤 연설이나 수사보다 평화롭다.

그럼에도 제 잇속을 챙기려는 심보가 나라 간에 지역 간에 이웃 간에 더해지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를 읽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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