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라의 점묘화 / 나희덕
언제부턴가 선이 무서워졌어요 거침없이 달리며 형태와 색채를 뿜어내는 선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사물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다고 할까요 아니면 빛에 대한 난해한 사랑이 생겼다고 할까요 선들이 내지르는 굉음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일요일 오후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자도 강둑에서 몸을 말리는 남자도 나팔을 부는 소년도 의자에 기대앉은 노인도 처음엔 완강한 선 속에 갇혀 있었지요 그들을 꺼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을 빻고 또 빻는 일뿐이었어요 아침에 문밖에서 길어온 이미지를 불에 달군 쇠막대기처럼 망치로 종일 두드려요 저녁 무렵에야 뜨거워진 선에서 떨어져나온 쇳가루들이 캔버스에 점점이 흩어지지요 빛은 가루가 되어 다른 빛과 몸을 섞어요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에 스며들어요 검은 개는 더 이상 검은 개가 아니에요 개의 털빛과 그 위에 내리는 빛이 만나 어룽거려요 희미해진 개와 고양이와 사람들은 햇빛 속을 한가롭게 거닐지요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없어요 서로를 삼키고 비추는 점들의 환영, 그 한 폭의 기이한 평화 앞에서 내 눈은 점점 어두워져요
- 『야생사과』, 창비, 2009.
* 조르주 쇠라(1859-1891)는 점묘법을 시도한 대표적 화가다. 점묘법은 대상의 전체적인 인상을 분석하고 세부적으로는 낱낱의 점을 찍어 그 인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1883-1884)도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이 실험적인 그림은 공식적인 살롱 전에 출품이 거절당한다. 이런 조치에 불만을 품은 예술가끼리 독립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1884년, 이 해부터 심사도 상도 없는 앵데팡당 전을 이어오고 있다. 점 하나 찍는 데 지속적인 색채 연구와 실기를 병행하다 보니,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의 경우, 습작과 작업 시간이 2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위 시의 화자는 해당 그림을 그린 조르주 쇠라지만, 실제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르주 쇠라를 빌린 나희덕 시인의 육성에 가깝다. 선은 “형태와 색채를 뿜어내”는 출발이고 또한 형태와 색채를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부득불 선을 지우고 일일이 점 찍는 일에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여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애써 그렇게 하는 것은 경계를 분명히 짓는 그래서 이쪽과 저쪽을 섞지 못하는 선의 세계가 몹시 불편했기 때문이다.
선을 빻고, 선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가 섞이고, 그림자마저 서로에게 스미는 세계에 이르러서야 시인은 비로소 평화로움을 느낀다. 선을 지우고 얻은 점이라 하더라도 가까이 세세하게 보려고 들면 점 또한 점점 흐려질 뿐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선에 갇힌 것들을 빼내어 자유롭게 하되, 뒤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면 그뿐이지 그 자유를 섣불리 규정해선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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