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동 / 이철산
어린 넝마들이 망태를 메고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나 누런 마대 종이를 찾아 골목을 뒤지다가 밤이 깊어 스며들던 고물상 넒은 마당에 거적때기 엉성하게 엮은 움막이 있었지 모래를 산처럼 쌓아놓고 구멍 쑹쑹 블록을 척척 찍어내던 벽돌공장 높았던 담이 고물상 옆으로 둘러서 있고 술 취한 인부들이 간혹 고물상을 향해 쌍욕을 해댔지 좁은 개천 둑길을 아슬하게 넘어 다녔던 낡은 세발 용달차가 수수깡을 한 바리씩 부리고 보들보들 수수깡빗자루를 실어내던 빗자루 공장에는 벌거숭이들이 늘 개미처럼 꼬였지 하루 벌어 끼니를 때웠던 사람들 하나같이 서부시장 들머리 바닥에 전을 펼쳐 여름이면 과일 행상에 겨울이면 밀가루호떡 고구마핫도그를 팔았지 어김없이 여름이면 물난리가 났고 개천은 넘치고 흘러 시장 쪽에서 떠내려온 수박이니 참외니 과일을 벌거숭이들이 와와 소리를 지르며 건져냈고 간혹 배가 빵빵해진 짐승들을 건져냈지 일요일마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지붕 높은 예배당으로 하얀 백설기에 홀려 코흘리개들 모였지 큰길 네거리로 하루에 두어 번 시꺼먼 매연을 매달고 시외버스가 쏜살같이 달렸지 비산동 거리마다 일을 찾지 못한 헐렁뱅이들이 어둠이 내릴 때까지 큰길 네거리를 떠나지 못했지 재개발 바람이 불어 언덕길 위로 빌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고 벽돌공장 자리는 작은 호텔이 되고 대형 슈퍼가 되고 수수깡빗자루공장을 따라 흘렀던 개울은 두꺼운 콘크리트 소방도로가 돼버렸지만 낡은 버스가 달려가던 큰길 네거리 새벽일 찾아 모여든 사람들, 막일조차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서성이네 비산동을 살아가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이 없는 사람들 하루를 서성이네
-『강철의 기억』, 삶창, 2019.
감상- 비산동(飛山洞)은 원래 평지였던 곳인데 산이 날아가다가 예서 주저앉았다는 전설이 있다. 와룡산 기슭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인 동기, 동검, 동모(창)와 그 부속품은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으니 연원이 깊은 동네다. 시인의 유년 체험이 간직된 비산동 모습은 농경지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벽돌공장, 수수깡빗자루공장, 고물상이 성업 중인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한 누이들의 상당수는 인근의 섬유공장, 염색공장, 안경공장으로 흩어져가고 고물을 줍거나 신문팔이를 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던 남자 아이들도 적잖았다. 비산동에서 조금 떨어진 남산동에 살기도 했던 전태일이 서울로 가출해서, 평화시장 봉제공장 재단사로 일하다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던 해도 1970년이다. 하루 열네댓 시간의 노동이 예사로 이루어지던 시절이다.
전태일 문학상으로 데뷔했던 시인은 “세상이 아무리 뒤집어져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소리 없이 장시간 노동을 버티고 스스로 목숨을 내놓고 공장을 세우고 거리에 서야 했다 여전히 여덟 시간 일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어떤 시위」중)라고 했으니 수많은 전태일을 앞세우고도 세상은 노동자에겐 좋아지지 않은 거다. 아닌 게 아니라, “30년 공장 생활 단 한 번 노조하다가 싸움에 나섰다가/ 잘리고 차압당하고 거리에 나앉더니/ 이 공단 저 공단 어디를 가도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지라”(「세상이 바뀌었다니」중)며 시인은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위 시에서도 비산동의 변해가는 풍속도 중 변하지 않는 그림이 하나 있으니, “일을 찾지 못한 헐렁뱅이”가 “막일조차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되어 나날의 생계를 걱정하며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이 여덟 시간 일하고 똑같이 월급 타서 저녁이나 주말이면 각자의 여가를 즐기는 간단한 논리가 이 자본주의 세상엔 아예 먹혀들지 않으니 전태일도 시인도 빈주먹을 쥘 뿐이다. 물론,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자 편에서 아파하고, 노동자 편에 힘을 보태려는 목소리가 있기에 힘센 자본 앞에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위 시에서 보듯 여름이면 물난리가 났다는 개천을 콘크리트로 덮고, 그 위로 차가 다니도록 하는 것을 도심 개발의 상징처럼 여기던 시절도 있었으나, 요즘은 거꾸로 복개된 것을 다시 뜯어서 물이 흐르게 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 인식이 바뀌면 돈을 쓰는 데도 바뀐다. 노동이 차별 없이 다 귀하다는 인식이 상식이 될 때 사장이나 노동자나,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또 그들의 2세, 3세들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다. 노동 못잖게 여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상식이 될 때 하루 여섯 시간 노동에 주 4일제가 일상이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날아가던 산이 주저앉는 것보다는 현실적이다. 전태일과 이철산 시인이 바라는 세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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