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현암사, 1995.
권정생 글을 찾아 읽다가 권정생이 서평을 강요받았다(?)는 전우익의 책을 읽는다. 권정생은 이오덕의 소개로 전우익을 만났을 때 이오덕과 쌍둥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봉화 사는 전우익은 안동의 권정생 오두막을 수시로 찾으며 교류하게 된다. 서평 부탁할 때 고흐의 그림책을 들고 갔다는데,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권정생 서평은 책 출간 이후에 나온 것인지 책에는 서평이 생략되어 있다. 편지 형식에 나무 이야기와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주로 남겼는데, 『동의보감』(이은성)이나 『사기』(사마천) 등을 좋게 읽었단다.
전우익은 자기 집 마당과 동네에 느티나무와 살구나무 등을 심어 나무가 자라고 숲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고, 필통이나 목침, 간단한 가구 등 삶에 요긴한 것들을 나무를 손질해서 얻고 선물하기를 즐겨한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에서 자신이 느낀 것들을 풀어놓기도 한다.
“환경이 좋다는 곳에서 자란 나무는 단단하기도 향기롭기도 덜하고 메마른 곳에서 자라는 나물수록 나이테가 쫌쫌하고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향기도 아주 진합니다” 혹은 “느티나무는 나무마다 잎이 다르고 단풍빛도 달라요. 자연의 무궁한 조화를 느끼기도 하고 나무도 각각 개성이 있다는 걸 알 것 같고, 큰 느티나무는 가지마다 잎 모양이 달라요. 정말 놀랍고 신비합니다” 등등의 표현에서 나무에 대한 애정이 앎과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무에 향이 있듯이 좋은 글을 읽으면 기운이 돌고 향도 있다고 말한다. 사마천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평에 기대어, 사마천은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살아간 사람”을 흠모했다고 봤으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자유인이라고 여겼다. 아마 스스로의 삶의 지향을 이렇게 밝힌 것이리라.
이능과 소무와 사마천 각각의 인물과 관계를 평하며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전우익의 말에 같이 공감하고 앎을 키워가려면 별 수 없이 『사기』를 찾거나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나카지마 아츠시)을 일독해야겠으나 눈 아픈 글보다 나무 곁에 가서 눈을 씻는 게 현명한 일일 수도 있다.
책 마지막은 전우익이 자신에게 책을 보내준 사람에게, “마포 선생님과 안동 몽실 아저씨한테도 책 보내 주소”라고 주문하는 내용인데, ‘마포 선생님’이 누군지 또 궁금해진다. 이오덕?, 신경림?, 책 출간한 현암사? 나는 왜 부록이나 곁가지가 더 궁금한지 모르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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