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티재, 2019.
- 종신보험에 돈을 꼬박꼬박 넣던 분이 종신보험은 본인이 죽고 나서야 돈이 나온다는 걸 뒤늦게 알고 바로 해지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술 담배 하는 남편의 종신보험은 그냥 두었다고 해서 조금 웃기도 했던 거 같다.
자신의 부재에도 가족이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배려하고 희생하는 마음은 귀하다고 하겠지만 그 돈으로 생시에 밥 한 끼 사 먹는 게 낫다는 얘기에도 공감이 간다.
늙음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를 쓴 노태맹 시인(노인요양병원 원장)이 종신보험에 가입했는지 아니면, 돈을 굳게 해서 다른 데 잘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자식이나 배우자마저도 우리 각자에겐 타인이고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글을 보면 왠지 종신보험에 주저했을 거 같긴 하다. 아무리 한집 밥 먹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타인으로 볼 줄 아는 여유와 거리를 가질 때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로에게 채우”는 고통을 피하거나 줄이는 길이라고 시인은 덧붙인다.
시인은 고공농성 끝에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노동자, 열악한 환경에 일하다가 쓰러진 청년 노동자 등의 죽음을 불러내며 이들의 죽음을 문제 삼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아파하기도 한다. 노동으로부터 밀려난 노인들의 삶을 언급하며, 오랜 노동 끝에 세계로부터 조금씩 추방되어 어느 시기부터에선가 무의미하게 생을 연장하는 현실에, 죽음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죽음을 배우는 것은 특별한 교양이 아니라 “노동을 통한, 동시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비로소 완성” 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죽음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시인 부부는 노년을 자식에게 의지하지 말자고 의논했다는데, 나도 집에 가면 혹시라도, 종신보험이 있는지 따져 묻기도 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묻는 시늉을 해야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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